[횡설수설]정옥자/사대와 자소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31분


전통시대의 외교는 사대(事大)와 교린(交隣)이었다. 사대는 중국과의 외교관계를, 교린은 기타 여러 나라와의 외교관계를 말한다. 사대란 중국이 당시의 세계인 동아시아의 주도국이자 선진국임을 인정하고 중국을 섬긴다는 뜻이다. 근대에 와서 제국주의적 시각이 덧칠되어 강자에게 굴종하고 아부한다는 뜻으로 사대주의라는 용어가 생겨났다.

▷전통시대 동아시아는 유교문화권이었기 때문에 외교도 이해관계나 힘의 논리만으로 성립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는 예조에서 외교를 관장했고 중국 역시 예부에서 외교를 관장했다. 개인간의 관계에서 예의가 중요하듯이 국가간의 사귐도 예의로 해야 한다는 인식의 소산이었다.

▷사대는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으로 실현됐다. 우리가 조공으로 특산품인 인삼 종이 붓 등을 가져가면 중국은 사여(賜與)라 하여 서적 약재 비단 등을 주었다. 우리는 특산품을, 중국은 당시의 최신 정보가 담겨 있는 서적 등 문화 상품을 반대 급부로 하여 상호 필요를 충족시켰으니 비록 예물 교환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공무역이었다. 책봉은 왕이 즉위하거나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 중국의 승인을 받는 절차로 오늘날 정권의 비준과 유사하다. 세계 각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미국의 ‘비준’부터 받아야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오늘날의 외교 관행과 다름없다.

▷그러나 사대는 자소(字小)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자(字)’는 사랑하거나 도와준다는 뜻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대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돌보아주거나 지원한다는 것이니 호혜적 관계를 설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통시대에 사대는 있었지만 사대주의란 없었고, 사대는 외교의 한 형태였을 뿐이다. 사대를 전통적 의미가 아니라 큰 나라를 섬긴다는 글자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현재 미국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자국의 국익만이 유일한 기준이 된 미국의 패권주의는 미국 내에서조차도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소 없는 일방적 사대의 강요는 미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 없고,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것이다.

정옥자 객원 논설위원

<서울대 교수·국사학·규장각 관장>

ojj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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