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대 동아시아는 유교문화권이었기 때문에 외교도 이해관계나 힘의 논리만으로 성립되지는 않았다. 우리나라는 예조에서 외교를 관장했고 중국 역시 예부에서 외교를 관장했다. 개인간의 관계에서 예의가 중요하듯이 국가간의 사귐도 예의로 해야 한다는 인식의 소산이었다.
▷사대는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으로 실현됐다. 우리가 조공으로 특산품인 인삼 종이 붓 등을 가져가면 중국은 사여(賜與)라 하여 서적 약재 비단 등을 주었다. 우리는 특산품을, 중국은 당시의 최신 정보가 담겨 있는 서적 등 문화 상품을 반대 급부로 하여 상호 필요를 충족시켰으니 비록 예물 교환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공무역이었다. 책봉은 왕이 즉위하거나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 중국의 승인을 받는 절차로 오늘날 정권의 비준과 유사하다. 세계 각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거나 정권이 교체되면 미국의 ‘비준’부터 받아야 국제적인 인정을 받는 오늘날의 외교 관행과 다름없다.
▷그러나 사대는 자소(字小)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자(字)’는 사랑하거나 도와준다는 뜻이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대가로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돌보아주거나 지원한다는 것이니 호혜적 관계를 설정했던 것이다. 따라서 전통시대에 사대는 있었지만 사대주의란 없었고, 사대는 외교의 한 형태였을 뿐이다. 사대를 전통적 의미가 아니라 큰 나라를 섬긴다는 글자 그대로만 해석한다면 이는 현재 미국의 희망 사항일 것이다. 자국의 국익만이 유일한 기준이 된 미국의 패권주의는 미국 내에서조차도 비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소 없는 일방적 사대의 강요는 미국을 위해서도 좋을 것이 없고, 세계인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못할 것이다.
정옥자 객원 논설위원
<서울대 교수·국사학·규장각 관장>
ojjung@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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