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컴백한 엄정화의 스타일리스트를 맡을 만큼 뛰어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가수 이혜영. 얼마전 한 패션 브랜드의 런칭 행사장에 핑크색 밍크 코트를 입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섹시하면서도 귀여운 이미지와 잘 어울려 한눈에도 ‘비싸’보였던 그 코트가 사실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20년도 넘은 펜디 제품이라는 사실. 오랜 기간 워낙 관리를 잘하기도 했지만 코트 자체가 유행을 타지 않는 기본적인 디자인이라 너덜너덜한 안감만 새것으로 바꿨더니 아무도 ‘그처럼 오래된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흔히 ‘명품’ 하면 그 엄청난 가격 때문에 일반인들은 ‘어느 정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명품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대를 물려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취재를 위해 만난 한 명품 브랜드 홍보 담당자는 비싼 가격만 보지 말고 ‘명품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서도 생각해 달라고 강조한다. 언제부턴가 10대들 사이에서도 ‘명품계(명품을 구입하기 위해 몇명이 모여서 돈을 모아 제품을 돌아가며 구입하는 것)’라는 것이 생겨날 정도로 명품 선호 현상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90년대 초 소수의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멤버십 잡지가 창간되고, 세계 최고의 브랜드만 입점했다는 갤러리아 명품관이 문을 열면서 명품 브랜드는 대중에게 처음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명품 바람을 일으키는 데는 연예인들의 역할도 컸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애인>에서 황신혜가 들고 나왔던 ‘구치 대나무손잡이 가방’과 <장미와 콩나물>에서 전혜진이 하고 나왔던 ‘티파니 백금 목걸이와 귀고리 세트’는 방송 후 매장에서 모두 동이 날 정도였다고 한다(전혜진은 티파니에서 감사패를 받았다는 후일담도 있다). 이에 고무된 명품 브랜드들이 ‘협찬’이라는 명목으로 인지도 있는 연예인에게 자사의 상품을 입히고 신겨서 홍보하는 ‘스타 마케팅’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옷 한벌에 2백만원, 가방 하나에 1백만원, 구두 한 켤레 30만원…. 산술적으로 따진다면 어마어마한 가격이지만 이 가격에는 손때가 묻을수록 오히려 멋스러워지는 ‘품질’과 ‘브랜드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다. 수백만원대를 호가한다는 에르메스의 ‘켈리백’은 색상과 소재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 처음 만들어졌던 1930년의 제품과 똑같은 것을 지금도 매장에서 구입할 수 있다. 이 제품은 가죽 재단부터 바느질까지 전 공정이 수공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한 사람의 기술자가 1주일에 두개 정도의 제품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테스토니에서 글러브 이펙트 공법(공기 가죽 주머니를 밑창에 삽입해 발이 신발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 것으로 걸을 때는 신발이 늘어났다가 서있을 때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마치 장갑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으로 만든 ‘블랙 레이블’ 구두도 70년 이상 같은 디자인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이 구두 역시 1백68회의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데 신어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최고로 ‘편안한 구두’로 명성이 자자하다.
사실 값싼 시장 제품을 선택할지 브랜드 이름값까지 지불해야 하는 명품을 택할지는 순전히 소비자의 몫이다(시장에서 파는 가방이나 구두에 심각한 결함이 있지 않은 한). 같은 명품도 면세점에서 구입할지 아니면 세컨드숍이라 불리는 중고 명품숍에서 살지 그도 아니면 사이버 쇼핑몰을 통해 택배로 받을 것인지, 이것 역시 소비자가 선택할 몫이다.
현명한 소비자가 있는 한 가격표에 붙은 동그라미의 개수만으로 ‘과소비다, 아니다’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물론 명품족 중에는 정말 개념 없이 소비하는 사람들도 많긴 하지만). 시장에서 값싼 물건을 사서 알뜰살뜰 사는 것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 있다면 ‘대를 이어 사용할 수 있는 명품’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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