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안 리의 고마운 아침/조안 리 지음 /267쪽 8500원 문예당
‘삶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미 베스트셀러 저자로 유명한 쉰여섯 동갑내기 두 중년 여성이 최근 펴낸 자전적 에세이를 읽으면서 기자의 뇌리를 스친 한 구절이다. 한 고비 넘겼다 싶으면 다시 덮쳐 버리는 삶의 파도들. 그 속에서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이며 또한 얼마나 강한 존재인가. 삶은 지속되어야 하기에 고해(苦海)이지만 또한 그러기에 선물일 수 있으리라.
‘강한 여자는 수채화처럼 산다’ ‘아픈만큼 그대 가까이’ 등의 책을 냈던 서양화가 이정순씨는 3년전 남편을 갑작스런 폐암으로 떠나 보내야 했다.
상실의 쓰라림이 채 가시기도 전 본인이 자궁을 들어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몸이 회복될 즈음 느닷없이 집이 빼앗길 위기에 빠진다. 남편이 죽기 전 집 담보를 서 준 친구회사가 망한 것이었다. 이씨는 그 와중에 딸을 시집 보냈고 남편의 분신같은 손자를 얻는다. 삶의 조화속이란 생각할수록 희한한 것이어서 금방 숨이라도 끊길 것 같은 고통이 주어지다가도 어느 순간 이를 이완시켜 주는 치료제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
이 책은 지난 3년간 그녀에게 닥친 위기속에서 강한 의지와 주변의 도움으로 이겨 나간 일상들을 잔잔한 필체로 그려 나가고 있다.
남편의 갑작스런 발병과 투병,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4개월이 책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그녀에게 남편의 부재는 가장 큰 ‘사건’이었다. 병에 놀라고 싸우다 결국 순응하기까지 부부의 섬세한 감정의 변화, 막상 반쪽을 보내고 난 뒤 정신과 치료가 필요할 만큼 들이 닥친 외로움의 고통…. 그 속에서 이씨는 당혹스러움 처절함 분함 억울함 한심함 비참함 등에 뒤섞여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약해지지만 결국 삶을 바라보는 여유와 관조로 승화시켜 낸다.
‘인생이란 어둠과 밝음이 공존하는 것인데 왜 우리는 어둠을 외면하는 것일까. 어둡고 아픈 시간 동안 무지를 깨닫고 각성하는 기회를 더 잘 포착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무엇을 이루었을 때가 아니고 패배를 당했을 때 삶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운다는 것을 알았다.’
스물여섯살 연상의 카톨릭 사제와 나눈 파격적인 러브스토리 ‘스물셋의 사랑 마흔아홉의 성공’의 저자이자 성공적인 커리어 우먼으로 잘 알려진 조안리씨(56)의 신작 ‘고마운 아침’도 그녀가 지난 몇년간 겪은 사업 실패와 건강상의 시련이라는 예기치 않은 고통들이 화두다.
특히 갈비뼈에 금이가고 발목뼈가 부러진 데 이어 뇌출혈까지 이어져 두개골에 구멍을 뚫어 뇌에 고인 피를 뽑아 내야 하는 목숨을 건 대수술은 인생을 자신감과 자유로움으로 살아온 그녀를 마구 흔들어 댔다. 고해성사나 다름없는 내밀한 일상을 공개한 것은 그녀가 몸의 고장을 통해 삶의 겸손함을 배웠다는 것을 말해준다.
‘돈? 재산? 어차피 육신은 스러지고 영혼마저 이 세상을 떠난다면 그까짓 재화야 한낱 무용지물에 불과한 것 아닌가? 내게 닥친 시련들은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게 했고 앞으로 남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의 척도와는 무관한 새로운 가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 들이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스물여섯 연상의 남편과 결혼한 저자가 정작 큰 딸보다 열여섯살이나 많은 사위를 받아들여야할 때의 당혹스러움, 또 본인도 삼십년전 성당에서 남편과 단 둘이 결혼식을 올렸지만 미국 사는 둘째 딸이 ‘자유로운 결혼’을 하겠다며 엄마도 초대하지 않고 결혼식을 올려 버렸을 때의 박탈감을 토로하면서 골칫덩어리 딸(저자) 때문에 고통받았을 친정엄마를 생각하는 대목에선 인생의 묘한 순환을 느끼게 된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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