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속에서 나를 엄마라고 잊지 않고 불러주는 호칭이 송구스러웠던 순간들. 그때마다 나는 아이 곁에서 동시를 읽곤 했다. 아이는 어른인 내게 함께 가자고 그 조그맣고 따슨 손을 내밀어 나의 차가운 손을 녹여 주었다. 복잡하고 골치 아픈 내 꿍꿍이 속셈을 풀어 그 단순한 마음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어느새 나는 가슴 속에 불씨 하나 은밀히 감추어 두고 수시로 풀무질을 해대곤 했다. 헛된 열정이 아닌가 불안에 떨면서.
참 좋은 동시를 읽으면서 행복했던 순간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그리도 써야 한다는 것에 완고했는지, 아이 앞에서 속죄하는 심정이 된다. 그 딱딱한 어둠의 창을 아이는 말간 눈빛으로 열어 주었다. 이 나이 먹도록 사방 모르는 것에 둘러싸여 그 어둠에 익숙해지려고 주춤거리곤 하는데, 내게 맞는 조붓한 길 하나 둥싯 떠오른 것 같다. 이젠 결코 뒤돌아보지 않고 그 길 다져가며 걷겠노라 고개를 주억거린다. 늦었지만 결코 서두르지 않고 더욱 천천히, 조심스럽게. 많이 자란 아이 곁에서 한층 작아진 나의 낮은 키로 세상의 어린 것들을 바라보며.
애초에 똑똑함과는 거리가 먼 나를 잘 안다고는 했지만, 그래서 종종 헤매고 더듬거려도 용서받았던 많은 기억 사이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얼굴들이 선연히 떠오른다. 그 감사할 모습이 너무 많아 깊은 숨을 몰아 내쉰다. 딸의 허물을 주우며 나의 뒤에 서 계신 어머니, 내세울 모습이 없는 며느리를 보듬어 주시는 시어머니, 그리고 냉철하지만 따듯한 가슴으로 나의 작품을 읽어주는 남편, 주위 가족들. 많은 선생님들, 특히 데보라 수녀님의 기도, 감사하다. 훌쩍 지나온 세월의 강가에 굳건히 서 있는 돌다리, 모두가 그곳에 새겨진 이름들이다. 아울러 심사위원 선생님의 격려에, 지금은 좋은 작품을 쓰겠노라는 다짐밖에 드릴 게 없어 나는 가만히 고개 숙인다.
△1959년 충남 논산 출생 △2000년 대전 우송공업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현재 독서 및 글쓰기 개인교습
◆ 2002년 동아 신춘문예 당선작 및 가작 전문(全文)은 동아닷컴(http://www.donga.com/docs/sinch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