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준비하지 않으면 존재는 하되 이익을 못내는 삼류기업으로 전락할 것이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춰 ‘강하면서도 존경받는’ 초일류 기업을 만들자.”(삼성 이건희·李健熙 회장)
“아무리 뛰어난 상품과 기술이 있어도 시장과 고객이 외면하면 기업의 장래는 어둡다. 최고의 품질과 서비스, 원칙에 충실한 기업정신으로 미래를 선도하자.”(SK 손길승·孫吉丞 회장)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변해야 한다. 고객 중심의 경영체제만이 우리의 살길이다.”(포항제철 유상부·劉常夫 회장)
대망의 2002년 벽두. 주요 그룹 총수들은 2일 시무식에서 발표할 신년사를 통해 ‘경쟁력 강화’ ‘고객 중시’ ‘변화에 대한 준비’ ‘수익성 확보’ 등의 덕목을 새해 경영의 화두로 제시했다.
대기업 회장들은 중국 등 해외 전략시장에 적극 진출할 것을 다짐하면서 “국내외 정세의 급격한 변화에 대비해 위기대응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독려했다.
경제단체 대표들은 선거정국의 본격화로 경제현안이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현상이 나타날 것을 염려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려는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올해 신년사의 특징은 은유적 화법 대신 직설적 표현을 많이 사용했다는 점. 불황의 터널이 길었던 탓에 새해를 맞는 총수들의 마음가짐도 각별했을 것이라는 게 재계의 해석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총수들은 최고수준의 품질 확보와 새로운 사업기회 포착을 새해의 핵심 과제로 꼽았다.
삼성 이 회장은 “기업의 세계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고 오직 시장과 고객이 있을 뿐”이라며 “시장을 선점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으려면 어떤 경쟁자와도 협력하고 제휴하는 상생의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LG 구본무(具本茂) 회장은 “경쟁이 갈수록 치열한 세계시장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미래 성장엔진인 연구개발(R&D)”이라며 중장기 경쟁력을 키우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차 정몽구(鄭夢九) 회장은 “‘현대와 기아가 만드는 차는 믿을 수 있다’는 신뢰감을 확산시켜야 한다”며 “현대차의 품질을 전 세계에 알리는 원년(元年)으로 삼자”고 당부했다.
두산 박용오(朴容旿) 회장은 “21세기에는 기회를 선점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며 신규 유망산업에 과감하게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자만은 금물, 내실 다져 재도약〓SK 손 회장은 “지난해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재무구조 개선에 계속 힘써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내실경영이 투자위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신중히 판단하되 일단 결정한 뒤에는 추진력을 발휘하겠다는 것.
두산 박 회장도 “다른 기업보다 구조조정을 잘했다는 외부 칭찬에 자만한다면 세계일류의 꿈은 이룰 수 없다”며 사업 전문화에 박차를 가하자고 말했다.
기업가치 극대화를 새해 경영방침으로 정한 금호 박정구 회장은 “전투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있어도 경계에 실패한 장수는 용서할 수 없다”며 모든 업무를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라고 주문했다.
▽정부 기업 근로자 함께 노력해야〓김각중(金珏中) 전경련 회장은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위해 규제완화에 더욱 힘쓰고 기업인은 투명경영과 자체 혁신을 통해 본연의 책무를 다해야한다”고 말했다.
김창성(金昌星) 경총 회장은 “정부와 정치권이 대중적인 인기영합으로부터 한발 물러서는 결단의 용기를 보여주기 바란다”며 “기업인과 근로자도 노사관계 안정이 경제회생의 필수 조건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김광현기자kkh@donga.com
▼주요 경제당국자 신년사▼
진념(陳稔)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등 정부의 경제팀은 신년사를 통해 “새해 경제정책의 역점을 경기활성화에 두겠다”고 밝혔다. 또 엔저와 도하라운드 등 대외적 변수에 대응책을 마련하고 대선 등 선거 일정에도 불구, 정책기조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겠다고 다짐했다.
진 부총리는 또 △구조개혁의 지속 추진 △하반기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협상 대응체제 구축 △정보기술(IT) 바이오기술(BT) 등 새 성장동력 확충 △중산, 서민층 지원과 지역 균형발전 등 다섯 가지를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전철환(全哲煥) 한국은행 총재는 “새해에는 경기활성화 대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미국 경제도 회복돼 작년보다 경제 상황이 다소 나아질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데 두면서 물가 안정에 유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 총재는 “시장금리의 과도한 변동이 있으면 공개시장조작 등으로 대처하고 엔화 등환율 변동폭이 과도하다고 판단되면 외환수급조절 등의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근영(李瑾榮) 금융감독위원장은 “작년은 대형 은행간 합병, 금융지주회사 출범, 문제기업 정상화 방안 강구, 상시 구조조정을 통한 금융시장 안정 등을 통해 미래 금융산업의 초석을 다진 한 해”라고 평가한 뒤 “새해에는 금융소비자 보호와 이를 통한 시장규율 강화에 주력해 구조조정의 성과를 금융이용자들이 함께 나누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전윤철(田允喆) 기획예산처 장관은 “경제가 5%내외의 잠재성장률 이상으로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이기 전까지 재정의 가용재원을 동원해 경제활성화를 적극 뒷받침할 것”이라면서 “예산 기금 공기업 등의 상반기 투자 규모를 최대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박중현기자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