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불어닥친 ‘글로벌 스탠더드’의 열풍은 경제 분야의 관행과 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게 바꿔 한국이 국제 신인도를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짧은 기간에 무리하게 국제기준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적잖은 부작용이 빚어졌다.
무엇보다 미국식 기준이 경영의 투명성 여부를 판단하는 유일한 잣대로 부각되면서 ‘한국적 특성을 중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일부 제도는 글로벌 스탠더드보다 더 강한 규제를 담아 역차별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좌승희 원장은 “글로벌 스탠더드를 존중하는 건 당연하지만 국내 기업에 대한 규제가 선진국보다 가혹해서는 곤란하다”며 “기업활력을 살리려면 최근 4년간 도입한 제도들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부채비율 200%의 일률적 준수는 성과가 큰 만큼 부작용도 심한 대표적 사례로 지목된다. 이 제도의 도입으로 30대 그룹의 부채비율은 97년 518.9%에서 지난해 171.2%로 낮아졌다. 하지만 개별 기업과 업종의 특성을 무시한 채 모든 기업을 대상으로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바람에 신규 유망분야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입한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8% 준수의무도 비슷한 사례. 금융기관의 BIS 비율은 높아졌지만 경직된 적용으로 인해 금융기관의 자금중개 기능이 마비돼 기업 도산을 부추겼다.
국제통화기금(IMF)의 강권으로 채택된 초(超)고금리 정책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 최악의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면 고금리가 필요하다는 발상에서 나온 정책이지만 외자유치 효과보다는 대규모 기업도산으로 이어져 실물경기를 과도하게 냉각시켰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범주에 들지는 않지만 정부 주도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도 개혁이라는 명분에 얽매여 기업의 전략적 판단을 무시할 경우 악영향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법적 규제에 대한 맹신에서 벗어나 시장의 자율적인 조정 기능을 통해 경제현안의 해결책을 찾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한국 특유의 규제정책은 현실과의 적합성 여부를 면밀히 따져 존폐 여부를 다시 결정해야 한다는 것.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되 기존 제도가 갖고 있는 강점은 계속 유지하는 새로운 한국형 경제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박원재기자 parkwj@donga.com
기업관련 규제의 주요 역차별 사례 | |
내용 | 문제점 |
30대 기업집단 지정 | 외국기업은 재무 사업 세제 등 규제대상에서 제외 |
출자총액 제한 | 신규 합작투자 제약, M&A때 경영권방어 곤란 |
내국인의 은행소유 제한 | 외국인은 10%까지 허용, 금융 겸업화 등 전략 제약 |
투신사의 계열사지분 제한 | 자산 운용대상 제한으로 수익성 한계 |
회사채 신속인수제 | 외국계는 지원 거부, 국내 금융기관만 부실화 우려 |
30대그룹 결합재무제표 의무화 | 국내기업만 작성, 재무상황의 축소 평균화 |
외국기업에 대한 각종 세제감면 | 국내기업은 배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