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문제는 이제부터다. 어차피 통합여부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간 만큼 알 바 아니라며 시간 때우기로 일관하면 건보 재정 적자는 더욱 불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예기간이 끝난 뒤에도 상황이 호전되지 않을 경우 다시 닥칠 혼란의 정도는 지금보다 훨씬 심할 것이 분명하다. 정부는 유예 합의로 문제가 수습되었다고 마음놓아서는 안 된다. 대신 앞으로의 1년반에 건보의 사활이 걸렸다는 각오로 마음을 다잡고 유예 합의를 재정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새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건보 재정을 오늘과 같은 ‘뇌사상태’로 몰아넣은 근본 원인은 정부에 있다. 2000년 7월 지역과 직장보험 조직을 통합하면서 재정통합을 미룬 것은 자영업자 소득파악률을 끌어올려 공평한 부과체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도 소득파악률은 30%를 약간 웃돌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최소한 60% 이상에는 턱없이 모자란다. 정부가 국세청 등 모든 기관을 총동원해 자영업자 소득파악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내년 7월에도 상황이 별로 나아질 가능성은 없다. 자칫 지방선거와 대선 분위기에 휘말려 시간을 보내면 건보 재정은 백약이 무효인 상태로 악화되고 그럴 경우 두고두고 국민 모두의 부담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건보료 인상문제도 시급히 결정해야 할 사항이다. 건보 수가 적정성 공방이 건보료 인상의 발목을 잡아 매달 500억원 이상 수입차질을 빚고 있는 만큼 정부는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당장 수가에 대한 재검토에 나서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와 함께 통합을 전제로 제정한 건보종합대책도 전면 수정해 직장과 지역건보 재정 불균형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이미 악화될 대로 악화된 건보 재정이 1년반 뒤 갑자기 흑자로 돌아서리라고는 누구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회생 가능성은 보여줘야 다시 국민에게 협조를 구하고 고통분담을 요청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을 설득하고 차기정권에도 승계할 수 있는 장기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것은 건보를 부실덩어리로 만들어 온 나라를 고통과 혼란 속으로 몰아넣은 현 정권이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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