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쌀 개방, 대규모 영농으로 맞서자

  • 입력 2002년 1월 6일 18시 17분


10여년 전 인도네시아 정부의 농업기술 전문 컨설턴트로 일했을 때의 일이다. 영국의 어느 컨설턴트와 우리나라의 쌀값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때 필자가 한국의 쌀값이 ㎏당 미화 1달러가 조금 넘는다고 했더니 그 영국사람은 이를 도무지 믿으려 하질 않았다. 필자가 뭔가 착각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만큼 한국의 쌀값은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농업인의 생활이 풍요롭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두말할 것 없이 우리나라 농업이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 즉 영농규모의 영세성과 이에 따른 고비용 저생산성 때문이다. 생산비가 비싸게 먹히고 영농규모가 구멍가게 수준이라 농업인의 주머니에 들어가는 돈은 적게 마련이다.

거꾸로 말하면 현재의 쌀값이 그대로 유지되고 규모화 영농을 통해 생산비를 어느 정도 줄일 수만 있다면 쌀 농사만큼 수지 맞는 농사도 없다는 말이다.

우리나라는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 10년 간의 이행 유보를 조건으로 쌀 시장 전면 개방을 약속했으며, 지난해 11월 세계무역기구(WTO) 도하라운드 스케줄에 따라 2004년 말까지 우리의 쌀 시장 완전 개방에 대한 이행협상을 완료키로 했다. 이에 따라 2005년부터 쌀 시장 전면 개방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제는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적 여유가 없다. 쌀 시장 전면 개방에 따른 대비책이 조속히 강구되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시점에 와 있다. 대비책을 만들어 검토하고 수정해 이를 성안하고 또 준비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지금쯤은 대비책 마련에 난상토론이 연일 벌어져도 시원찮을 마당에 행정당국은 물론, 언론매체나 관련 연구단체에서도 침묵만 지키고 있다. 이제 남은 기간은 3년 정도. 더구나 이 기간은 뜨거운 정치의 계절과 맞물려 있어 걱정이다.

수입쌀은 아무리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우리나라 쌀값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우리 쌀이 경쟁하기에는 무척 어렵다.

가장 질 좋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에 200%의 관세를 부과한다고 해도 그 가격은 우리 쌀값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토록 심각한 문제가 ‘신토불이’라든가 ‘국산 쌀 먹어주기 운동’ 등 순진한 애국심에 호소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와 같이 외국에 비해 땅값이 금싸라기인 나라에서 농지의 매매사업을 통해 규모화를 기하겠다는 농업정책은 그 발상부터 잘못된 것이다.

우리 농업이 어느 정도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8.5%에 이르는 농업인구의 비율을 5% 이하로 떨어뜨려야 한다. 경영규모도 50∼100㏊ 정도는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소유 규모와는 별도로 농업 경영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워 주는 방안이 해법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지금 일본에서 시도되고 있는 영농회사 또는 영농조합 형태 등 기업농 개념의 영농 규모화 사업에 대한 정책적 방안이 적극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김대년(국제 농업전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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