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문제에 시장원리를 적용해보자. 수요가 줄면 공급도 줄어든다. 반대로 공급이 모자라면 가격이 올라 수요도 줄어든다. 예를 들어, 우리사회에는 교회가 많다. 선한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신학대학 졸업생이 많기 때문이다. 목사 배출이 적어지면 교회 수도 줄어들 것이다.
부패도 수요가 줄거나 공급이 억제되면 사라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사회 엘리트층의 부도덕, 규제행정, 탈세하는 기업인, 부정직한 근로자가 없어지지 않는 한 부패 수요는 무수히 많다. 또한,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도 있기 때문에 부패공급도 억제하기 어렵다. 그러나 부패공급의 수단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공급수단의 대부분은 추적이 어려운 ‘세종대왕’(현찰)이고, 예외적으로 주식이다. 이 현찰은 대부분이 탈세한 검은 돈이다. 그러므로 탈세가 줄면 부패공급도 그만큼 준다. 정부가 국민에게 신용카드를 사용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세수 증대보다 부패 감소의 의의가 더 큰 것이다.
신용카드의 일반화로 일반 사업자의 탈세는 줄어들었으나 기업의 탈세(비자금)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기업운영상 아직도 부패공급 동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업이 비자금을 만들고 쓰는 과정에서 가지급금 계정(가불)이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로비활동 필요성은 긴급하게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므로 사장이 우선 가불로 회사 돈을 빼내어 쓰고, 나중에 비자금을 만들어 갚는다.
비자금의 대부분은 하청기업에 실거래액보다 많이 지급하고 초과분을 영수증 없이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 조성하고 있다. 반환하는 하청기업도 독촉이 심하므로 초과 입금분을 우선 가지급금 계정에서 인출해 돌려주게 된다. 그리고 재하청업자로부터 같은 방법으로 자금을 염출한다.
이러한 유형이 반복해서 연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러므로 단 한 건의 대기업 부정이 관련기업 수백 개 기업의 탈세와 회계부정을 유발한다. 기업회계상 가지급금 계정이란 수백 개 관련기업 비자금 조성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유하면 지하철역과 같다. 역의 통행을 억제하면 지하철 손님은 줄게 된다. 같은 이치로 가지급금의 활용을 억제하면 그만큼 비자금 만들기도 어려워진다. 즉, 사장이 가불할 때 가불목적을, 상환할 때 자금원천을 세무서에 각각 소명하도록 한다면 비자금 조성이 어려워지고 검은 돈이 줄어들 것이다. 또한 이 제도가 시행되면, 뇌물을 받는 사람도 기업이 주는 뇌물의 조성방법까지 알지 않으면 불안해 부패수요도 줄 것이다.
그런데 비자금 조성방법에는 세금계산서가 필요하지 않은 해외거래나 소비자 직거래 등 다른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대기업에서는 가지급금 계정을 활용하는 것은 옛날 이야기라고 한다.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쓴다고 한다. 그렇지만 사전에 만들든, 사후에 정리하든 선후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부정한 자금을 만드는 방법은 앞에서 말한 리베이트형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가지급금이라는 연결고리를 차단해 검은 돈의 흐름을 줄인다면 부패공급은 감소될 것이다. 이는 세법 개정이 필요치 않고, 국세청 고시 정도로도 가능하다. 이렇게 간단한 세무행정 개선으로도 상당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부패방지에 만능의 방법은 없다. 근본은 국민의 도덕심 교육이다. 그러나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도덕심을 모든 사람들에게 기대할 수는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새 천년을 맞은 이 땅을 부패천국으로 방치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라를 이끌 정치가가 해야 할 일이나 지금의 현실로 볼 때 기대할 바가 못된다. 부패의 온상이라고 비난받는 우리 기업인들이 과거 산업사회를 이룩한 것처럼 부패 척결에 스스로 앞장서자.
박종규(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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