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기러기아빠 “주말엔 뭘하지”

  • 입력 2002년 1월 11일 18시 17분


‘주말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면서 부인을 동반시킨 이른바 ‘기러기 아빠’의 고민이다. 이들은 상당수가 대기업체 임원이거나 중견기업체 대표, 고위공직자 등이다.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후 자신만의 성공신화를 가진 이들은 어디를 가나 VIP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이들은 주말이 싫다. 혼자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목요일쯤 되면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술자리 또는 골프 등산 약속을 잡느라 안절부절못한다.

일요일이면 회원권을 갖고 있는 호텔에서 헬스클럽 식당 바 수영장 등을 왔다갔다하며 하루를 보내는 대기업체 임원도 있다.

초등학생 딸을 엄마와 함께 캐나다로 유학 보낸 한 경제단체의 임원은 한동안 우울증 초기증세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신경정신과에서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 연습 증세’라는 진단을 받았다.

“가족들과 몇 년 떨어져 있다보니 서먹해져서 방학 때 만나도 따뜻한 이야기를 나누지 못합니다. 짜증만 내기 십상이지요. 문득 내가 가족의 일원이 아니라 유학비 버는 기계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이런 얘기들은 유학을 보낼 형편이 되는 사람들의 ‘배부른 고민’일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황량한 내면세계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VIP라는 이들이 이토록 불행하다면 도대체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행복한 걸까’라는 의문이 든다.

한 기러기 아빠는 “1인당 국민소득이 아무리 높아져도 질 높은 교육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이 때문에 가족관계마저 위협받는다면 삶의 질(質)은 열악한 것”이라고 탄식했다.

이렇듯 일부 성공한 1세대는 2세의 더 큰 성공을 기대하며 ‘나홀로 집에’ 생활을 감수한다. 이들은 한국의 열악한 교육환경 때문에 자녀를 선진국 학교에 보내는 것.

경제부문에서 선진권 문턱에 들어선 한국은 교육분야에서는 왜 여전히 후발개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가. 소득이 높아지는 것에 걸맞게 교육의 질이 개선되지 않으면 기러기 아빠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병기 경제부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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