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춤을 춘다. 4개의 병이 공중곡예를 하며 함께 춤을 춘다.
유리잔 탑 위로 무색 빨간색 주황색 액체가 폭포처럼 흐른다.
환호와 술병과 음악이 엉킨다. 종이 울린다. 오후 10시반. 바텐더 ‘키쎄스’가 붉은빛 칵테일 ‘불륜’을 오늘의 주인공에게 전한다.
밝아진다. 조용한 음악이 흐른다. 바텐더 쇼가 끝나고 이제 사람들은 칵테일이나 맡겨놓은 술을 마시며 일행끼리, 혹은 바텐더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칵테일바 체인점 ‘더플래어’ 서울 선릉점의 부점장이자 경력 6년의 바텐더인 김혜진씨(26). ‘키쎄스’는 더플레어 바텐더 7명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인 그의 닉네임이다.
▽술〓‘불륜’은 키쎄스의 창작 칵테일이다. 럼주인 ‘바카디8’을 베이스로 해 복숭아 라임주스(무알코올) 석류시럽 스위트앤샤워 등으로 맛을 냈다. 키쎄스도 더플래어의 다른 모든 바텐더처럼 ‘바텐더 아카데미 레서퍼’(바텐더 전문 교육기관) 출신이다.
“바로 원했던 그 맛이라는 손님의 표정을 볼 때, 얼마나 짜릿한지 몰라요.”
대화에서, 눈에서, 몸짓에서 손님의 기분과 취향을 읽는다. 본인도 정작 뭘 원했는지 설명하지 못하는 맛을 찾아내 준다. 각 술과 재료의 특징을 꿰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요즘은 알코올이 강하지 않은 것을 좋아들 하세요. ‘술을 마시러’ 온다기보다는 칵테일을 배경 삼아 ‘분위기를 마시러’ 오니까요.”
▽훈련〓“팔 힘 장난 아니예요.”
상당한 무게의 병을 휙휙 돌리며 춤을 추려면 보통 체력으로는 어림없다.
“먼저 병과 친해지고 병과 이야기하고 병을 움직이게 하는 거죠. ‘고수’가 돼도 신기술을 배우는 건 항상 어려워요.”
아카데미에서는 처음에 나무병으로 시작한다. 바텐더 자체가 생소했던 6년 전에는 연습용 나무병도 없었다. 이불 깔아놓고 맥주병 소주병으로 연습하고 집에서는 에프킬러를 돌려댔다. 그래서 연습하다 병을 깨 본 적은 별로 없다.
지금도 이벤트를 준비, 팀 훈련, 안무 등으로 하루에 2시간 넘게 훈련한다.
▽삶〓미혼이다. 연애를 하기에는 시간대가 안 맞아 남자친구도 없다. 정오에 일어난다. 본사로 출근해 이벤트 기획을 하다 오후 5시에 매장으로 나온다. 부점장이라 식재료 재고관리 등 처리할 일도 많다. 오전 2시, 영업이 끝나면 연습을 시작한다. 오전 7시경 떠오르는 해를 보며 퇴근한다.
부모님이 좋아하실 리 없다. 그래도 지금은 ‘전문직’으로 인정해주고 바텐더 경연대회에서 좋은 공연을 펼치면 자랑스러워하신다.
“6년 전 아르바이트로 바에서 일하다가 이 길을 오게 됐죠. 처음에는 집에서 난리가 났어요. 멀쩡한 딸이 술집 나간다고요.”
▽사람〓“이 일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죠.”
대학생 교수 의사 회사원의 때로는 크고 때로는 자잘한 일상을 접할 기회가 어디 그리 흔한가.
“몇년 전만 해도 외국 생활을 해본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외국에 대해 동경도, 궁금한 것도 많을 때라 그런 이야기가 즐거웠죠.”
최근에는 바 문화가 확산돼 술을 ‘키핑’해 놓고 가끔 들러 한 잔씩 마시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위스키가 대부분이고 보드카나 럼을 맡겨 놓기도 한다. 칵테일 전문가 수준의 손님이 키쎄스도 모르는 칵테일을 주문해 당황하게 할 때도 있다.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다.
“직장생활의 고민, 가족문제…. 우리가 답을 줄 수는 없죠. 바가 사람들의 말이 트이고 쏟아놓은 고민이 분위기에 녹는 장이 된다면 충분하지 않은가요.”
김승진 기자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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