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파리의 동양미술박물관인 기메 박물관의 지하 특별 전시실에서는 ‘한국의 향수 (Nostalgies cor´eennes)’라는 제하에 17, 18세기 한국 고미술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들은 도쿄와 파리를 오가며 활동하는 한국 출신의 세계적 거장, 이우환 화백의 개인 컬렉션이다.
이 전시회 행사 기간에 맞춰, 프랑스국립박물관협회에서 출판한 동명의 화보집(218쪽)이 선보였다. 실제 작품들의 색감에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수려한 사진과 함께, 고미술 수집가로서의 범상치 않은 안목을 짐작케 하는 이 화백의 작품풀이를 곳곳에 곁들였다.
이번 특별 전시회를 기획한 기메 박물관 한국담당 큐레이터, 피에르 깡봉씨의 한국 고미술 입문을 위한 절제된 설명과 이 화백의 조선말기 장식미술에 대한 간결한 변도 들을 수 있다.
깡봉씨는 1999년 기메 박물관 소장품을 중심으로 꾸며진 화보집(384쪽·한국국제교류재단 후원)에서 한국 고미술 전반을 심도있게 소개한 바 있는, 이 분야의 흔치 않는 한국 전문가이다. 불어권에서 출판된 한국 예술 관련 화보집은 그리 많지 않다. 이외에 눈에 띄는 책은 정자와 사찰을 테마로 한국의 옛 건축양식을 소개한 프란시스 마쿠엥의 화보집(팽다클리출판사·1998)정도이다.
기메 박물관의 동양미술 시리즈로 나온 이번 화보집은 단순한 카타로그 수준을 넘어 프랑스 내에서 한국 고미술(조선말기 장식미술)을 위한 소중한 입문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회에 소개된 작품들이 샤머니즘, 불교, 도교를 아우르는 종교화, 신유교주의적 주제에 민화적 장식성을 가미한 문자도, 무명작가들의 거침없는 상상력이 드러나는 풍경화와 풍속화 등 당시 생활 장식미술에 대한 파노라마를 균형있게 연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부류의 예술서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끼여들 엄두를 내지는 못하지만, 분명 미술 전문가와 애호가들에게는 애정 어린 관심의 대상이다. 일반 프랑스 독자들의 주목을 끌 수는 없겠지만, 이번 전시회와 전시작품 화보집은 한불 문화교류 차원에서는 일대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쥐드폼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 현대회화의 거장의 눈을 통해서 중국과 일본 회화 사이에 가려져 있던 한국 전통회화의 독창성을 한껏 뽐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이 수집했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고 깊이 있는 컬렉션, 21세기 한국 회화의 무한한 잠재력과 풍요로움을 예감케 하는 수집품들은 우리를 동서양과 수세기에 걸친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이국땅에서 잊혀진 한국미에 대한 향수에 흠뻑 젖어들게 한다.
임준서 프랑스 LADL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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