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이 전형계획 시달▼
헌법 제31조 제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그 내용을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이는 대학에 대한 공권력 등 외부세력의 간섭을 배제하고 대학 구성원 자신이 대학을 자주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진리탐구와 지도자적 인격의 도야라는 대학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대학의 자율에는 대학시설의 관리운영, 교과과정의 편성 등은 물론 학생의 선발과 전형도 당연히 포함된다는 것이 통설이자 헌법재판소의 판례다. 국공립 대학에도 헌법상 대학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현행 교육법 및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을 매년 2월말까지 수립해 각 대학에 시달하고, 각 대학은 이 계획의 범위 내에서 학생을 선발하도록 하고 있다. 특히 국공립 대학은 고교생활기록부를 반드시 입학전형자료로 사용하고 필기고사는 논술고사만을 시행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그 결과 각 대학은 교육부가 주관하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절대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전국의 수험생과 대학이 등급화, 서열화되어 대학의 자율성과 전문성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교육부는 수학능력시험은 전형자료의 하나에 불과하고 학생선발은 대학의 자율에 맡겨져 있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교육부가 대학입시에서 학사일정에 이르기까지 대학을 철저히 통제 감독하려는 관료주의적 사고에 젖어 대학을 중등교육기관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현재와 같이 ‘수능점수 몇 등급, 몇 점짜리가 들어가는 대학’으로 서열화된 상황에서는 각 대학의 특성과 설립이념 등에 따른 차별화된 대학교육이 정착될 수 없다. 학생선발부터 대학운영 전반을 대학의 자율에 맡기고 아울러 그 책임도 대학이 지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헌법의 정신이며 대학의 이념을 구현하는 것이다.
또한 최근 서울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한 부동산값 상승과 교육이민 열기는 이른바 교육 평준화라는 제도가 초래한 공교육의 황폐화가 그 원인이라고 하겠다. 헌법은 균등하게 교육을 받되 어디까지나 능력(경제적 능력이 아닌 지적 능력)에 따라 교육을 받고, 가르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제31조 제1항).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의 원칙은 모든 사람을 똑같이 취급하는 절대적 산술적 평등이 아닌 ‘같은 것은 같게, 같지 아니한 것은 같지 아니하게’ 대우하라는 상대적 의미의 평등이다. 지나치게 하향평준화를 지향함으로써 우민화로 치닫고 있는 현 교육정책은 국가경쟁력의 약화는 물론 역사 발전의 보편성에도 반한다. 교육현장에서의 능력에 따른 경쟁원리를 도입하고 학생, 학교, 학부모에게 진정한 의미의 학교선택권, 학생선발권을 부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른바 자립형 사립고, 영재학교, 대안학교는 물론 지적 능력에 차이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체계적, 실질적 교육기관 등이 활성화되어 공교육이 제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학생선발권 대학에 맡겨야▼
헌법상의 명문규정 유무를 떠나 선진국 어느 나라에서도 대학의 자율성,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이 우리처럼 정권적, 관료주의적 차원에서 훼손되고 있는 나라는 없다. 현 정권의 여러 실정 중 국민이 가장 뼈저리게 피부로 느끼는 분야는 바로 업적 위주의 일관성없는 교육정책이 빚어낸 교육파탄이었음을 정권담당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헌법은 과거처럼 단순한 선언적 의미의 종이호랑이가 아니다. 국민의 생활 속에 살아 숨쉬는 재판규범으로서 헌법재판에 의해서 위헌적인 법령과 제도를 폐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위헌적인 대입제도와 교육정책은 이제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이석연 변호사·동국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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