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속의 에로티시즘]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 입력 2002년 2월 14일 14시 16분


1999년 칸 광고제에서는 언뜻 보기에 상당히 황당하게 느껴지는 작품이 인쇄 광고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제품에 대한 정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고, 마치 스냅사진을 찍은 듯한 이미지만이 덜렁 놓여 있다. 그러나 이 광고를 보고 “무슨 광고가 저래?” 하고 갸우뚱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미 이 제품의 타깃이 아니다.

심플하다 못해 모자라 보이기까지 하는 이미지엔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놓쳐서는 안될 기호가 숨어 있다. 서로를 감싸 안고 있는 펑크 스타일의 젊은 남녀의 젖꼭지가 그것.

착 달라붙는 옷 위로 도드라진 네 개의 젖꼭지는 각각 △ ○ × □의 모양을 하고 있다. 플레이스테이션이란 게임기를 한 번이라도 만져 본 사람은 그것이 플레이스테이션 특유의 버튼 형태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것이다.

젖꼭지와 게임기 버튼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만져 보고 싶다는 것이다. 전자는 성적 본능을, 후자는 놀이 본능을 자극한다.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이 오로지 버튼의 형태만을 젖꼭지에 접목시켜 인간의 가장 원초적 본능이라 할 수 있는 섹스와 놀이 본능을 함께 응축시킨 이 광고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정수를 모범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인간을 도발시키는 본능을 미끼로 삼아 인간과 기계의 만남을 의뭉스럽게 엮어냈다. 논리적 인과성, 개연성 따위는 없다. 제품과 최소한의 관련성만 존재한다.

미니멀리즘의 요체는 인위적인 모든 장치, 즉 미술에서 일루전(illusion)이라 일컫는 예술적 각색을 배제하고 하나의 현상을 존재하게 해주는 최소의 요소로 주제를 부각시키는 것이랄 수 있다. 사물의 본성 자체만으로 리얼리티를 구현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광고에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의 두 남녀를 기본 세팅으로 두고 젖꼭지 버튼이라는 최소한의 장치만을 활용하여 게임에 중독된 젊은이들의 리얼한 이미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때의 젖꼭지 버튼은 작은 요소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야기시키는 점화 플러그 역할을 한다.

내용상으론 성(性)과 놀이 본능을 교묘하게 자극하는, 형식적으로는 에로티시즘을 미니멀리즘 미학으로 승화시킨 한 편의 예술 작품 같은 광고. “버릴수록 단단해진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해주는 완벽한 한컷의 메타포다.

김홍탁 광고평론가·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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