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E.T.' 이후 외계인 캐릭터 변천사

  • 입력 2002년 2월 17일 17시 37분


거대한 우주선을 타고 날아와 지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화성인, 미지의 행성에서 마주친 인간을 잔인하게 도살하는 우주 괴물, 그리고 지구인들의 몸 속에 기생해 하나 둘 노예로 만드는 외계인들….

지난 100여 년의 영화사에 등장한 외계 생명체들의 90% 이상은 이처럼 끔찍하고 적대적인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20년 전인 1982년 ‘ET’(Extra Terrestrial)라는 귀여운 외계인이 쭈글쭈글한 손가락을 내밀고부터 달라졌다. 이 넓은 우주 속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지구인들에게 선량한 친구들이 찾아온 것이다.

아폴로의 달 착륙에 환호하며 SF와 우주의 경이로움을 깨달았던 스티븐 스필버그 세대들에게 외계는 더 이상 공포의 세계가 아니었다. 스필버그는 이미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 of The Third Kinds·77년)를 통해 고도의 과학 기술과 선량한 의지를 가진 신비한 외계의 존재를 소개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ET’의 성공은 외계인에 대한 사람들의 고루한 생각을 바꿨다. 이제 외계인은 어린이들의 친한 친구가 된 것이다.

착한 외계인이 인기를 얻게 되고, 가족 영화로서 외계인 영화의 가능성이 인정받으면서 코미디 외계인 영화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댄 애크로이드는 1983년 NBC TV의 코미디 쇼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aturday Night Live)에서 유쾌한 외계인 가족이 등장하는 ‘콘헤드’ 시리즈를 선보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양로원의 노인들은 외계인들이 잠자고 있는 ‘코쿤’(Cocoon·85년) 덕에 회춘을 하게 되고, 엉뚱하기 그지없는 ‘하워드 덕’(Howard The Duck·86년)의 오리 외계인과 ‘새 엄마는 외계인’(My Stepmo-ther Is an Alien)의 섹시한 킴 베이싱어 외계인이 영화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판 ‘콘헤드 대소동’(Coneheads·93년)이 원조 코믹 외계인들의 솜씨를 보여주었다.

‘ET’ 이전의 외계인 영화들이 미국인들이 외국인들에 대해 느끼는 적대와 공포의 감정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면, 이제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도착해 겪게 되는 문화적 차이를 코미디로 승화시키는 열린 시각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80, 90년대에도 ‘에일리언’(Alien)이라는 정통 호러 SF의 세계와 음흉하기 그지없는 ‘엑스 파일’ 시리즈의 음모적 외계인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등 SF 팬들이 외계인에게 얻고자 하는 본질적인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엑스 파일’(X-File)을 유쾌하게 비트는 ‘맨 인 블랙’(Men in Black)의 외계인들 속에서 인류와 공존 가능한 ‘ET’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이명석 영화 칼럼니스트·웹진 ‘마나마나’ 운영자 manamana@hanmia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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