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동해 거진항(강원 고성군). 모두가 잠든 이 시간에 출항준비로 부산한 거진항에는 이미 아침이 밝았다. 이때 가장 번잡한 곳은 수협어판장옆 거진지서(속초해양경찰서 소속). ‘선박신호포판’을 나눠주고 출항신고를 받기 때문이다.
오전 5시 40분. 기자가 탄 명태잡이배 제5 해성호도 출항했다. 나흘전 내린 그물을 걷으러 나가는 연휴끝 첫 출항에는 단 두사람, 선주이자 선장인 차진용씨(52)와 어민만 탔다. 기온은 영하, 바람은 자고 별빛은 총총. 그러나 바람가릴 곳 하나 없는 목선의 갑판은 냉동고와 다름없었다. 갑판에 피워 둔 장작불이 유일한 위안. 군불의 따스함은 새벽 바다를 가르는 배위의 바람속에서 빛났다.
한시간 쯤 지났을 까, 수평선 해무를 뚫고 아침해가 얼굴을 드러낼 쯤 어장에 닿았다. 어선은 수십척. 그물을 당기거나 찾느라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이런 수선스런 아침 바다 풍경을 해경 순시선이 지켜 보고 있었다. “요너머가 북한수역 아닙니까.” 그러면서 선장 차씨가 방위를 읽어 주었다. 북위 38도 35분. 순시선에 가로막힌 바다, 그 북한해역이 그 너머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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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씨가 가리키는 북녘바다에 북한 경비정으로 추정되는 검은 점이 보였다. “위험해도 할 수 없어요. 요즘은 여기까지 와야 명태가 보입니다.” 선장 차씨의 말. 그래서 명태철에만 북방어로한계선(북위 38도 33분) 이북까지 조업을 허가한단다. 그러나 이날 아침 제5 해성호는 여기서 명태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물을 찾지 못한 탓. 그 옆 삼성호에서 당긴 그물에는 명태가 빈틈이 없을 만큼 많이 걸려 올라왔지만….
오전 10시. 남쪽으로 배를 몰았다. 별반 기대는 하지 않는 눈치였다. 한참을 헤맨 끝에 신기(부표)를 찾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았던 일이 벌어졌다. 한 두 마리씩 그물에 걸려 있던 명태가 조금전 북방어장의 삼성호에서처럼 줄줄이 걸려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오후 12시반. 제5 해성호는 갑판의 70% 가량을 명태로 채운 상태로 귀항했다. 잡은 양은 대략 200두름 정도. 1월에 100드룸을 거뒀으니 올들어 최대 수확이다. 경매는 즉시 배 앞에서 이뤄졌다. 한 두름에 2만4700원. 나흘만의 출어로 명태가 많이 난 날인데도 낙찰가는 괜찮았다. 배를 내리자 함께 탔던 어민이 식구들에게 맛이나 보이라며 명태를 담아 주었다. 그러나 받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잡은 명태인데.
지난 3년간 거진항의 명태잡이는 그야말로 ‘꽝’이었다고 했다. 지난해는 겨우 하루 밖에 잡지 못했을 정도니. 10년전 한두름에 경매가가 500원이었다니 명태수확이 얼마나 줄었는지 알만 하다. 이유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상승. 냉수성 어종인 명태는 물이 따뜻하면 휴전선 아래로 내려오지 않는단다. 때문에 요즘 식탁의 명태는 홋카이도 근해의 일본태와 동해북부의 북한태, 그리고 황태 북어등은 베링해의 원양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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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태잡이의 쇄락으로 인한 피해자는 대대로 명태잡이를 해온 거진항 어민. “매번 빈 배로 돌아오니 늘어나는 것은 빚뿐이구요…. 파산은 가정까지 풍비박산내 결손가정에 결식아동만 늘어 구호미를 구해다 배급하는 실정입니다.” 거진 어촌계장 장용택씨의 고백이다.
그래도 가끔은 오늘처럼 명태가 나지만 벌이는 시원찮다. 낚시바늘 끼워 넣거나 때깔만 좋은 일본태를 지방태라고 속여 파는 일부 상인 때문에 제 값을 받지 못하기 때문. 낚시로 잡는 연승식 조업은 더 이상 없어 그런 명태는 무조건 수입태라고 했다. 약품처리된 명태는 때깔만 좋을 뿐 애는 녹아버려 맛 볼 수 없다고.
“명태덕에 살아온 주민들이 명태에게 은혜를 보답하고 동시에 스러진 어민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용기를 복돋워주려는 추스림의 의미가 큽니다”. 서동철 축제준비위원장은 “풍족하지는 않지만 함께 나누며 도시와 어촌간에 어울려 사는 지혜를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거진항〓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생태 맑은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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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고성군)분들은 명태를 매운탕 보다 ‘맑은 찌개(지리)’로 해 드세요. 소금으로만 간을 하지요. 고춧가루는 따로 드리니 기호에 따라 드실 수 있지요.”
거진항 수협 건너편 ‘경복횟집’ 주인 김승식씨(32). 40여년간 리어카로 생선받아 나르며 여기서 식당을 운영해온 어머니(정택연씨·64세)를 이은 2세 경영인. 그러나 음식맛은 그대로다. 주방일을 20여년간 어머니를 사사한 누나가 맡은 덕.
“회는 절대 산 놈만 씁니다. 명태도 고성산 지방태만 쓰지요.” 이 집 맛의 비결이자 식당 운영의 원칙이라는데. 식당 앞에서는 명태 ‘할복’작업이 한창이다. 배를 갈라 알 창자 곤지 애 아가미를 발라 내는데 손놀림이 전광석화다. “어머님이세요. 명란 창란 아가미젓 모두 직접 장만하니 젓갈이 남아돌 틈이 없어요. 단골손님들 주문에.”
이곳 주민들이 ‘맑은 찌개’만 드는 이유가 궁금했다. “매운탕은 양념맛이잖아요. 하지만 맑은 찌개는 달라요. 소금으로만 간을 하니까요.”
‘로컬’(지역민)을 따라야 제대로 먹을 수 있다는게 김사장에게서 배운 비법.
거진항의 겨울특미를 묻자 신바람나게 대답이 이어졌다. “도치라는 둔한 놈이 있는데 김치넣고 두루치기하면 그만이에요. 참새우 청어 삼숙이 전복치 돌참치 털게 모두 요즘 납니다. 회맛은 육질좋은 겨울이 최고에요.”
생태 ‘맑은 찌개’는 매일 경매가에 따라 다르나 보통 1인분에 6000원꼴. 하루전 주문해 달라고 했다. 033-682-1138, 681-4360
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여행정보◇축제행사(명태관련만) ▽볼거리〓△풍어제(23일 오후2시반) △불꽃놀이(23일 오후9시) △만선배 입항(23일 1시55분) △명태잡이 시연 ▽체험행사〓△명태요리시식회(매일 오후2시경) △어선시승(무료) 어선끌어당기기 어망만들기 ▽경연대회〓△명태배따기 △명태끼기 ◇여행정보 ▽찾아가기 △손수운전〓①서울∼영동고속도로∼현남TG∼양양∼설악동입구삼거리∼속초∼간성∼거진항(하남TG깃점 321㎞) ②서울∼양평∼홍천∼인제∼원통∼진부령∼고성 △대중교통〓서울↔간성 고속버스 운행(동서울, 상봉터미널 출발·3시간반 소요) 1만4200원. 간성↔거진항 시내버스 운행(15분 소요) 700원. 간성시외버스터미널 033-681-2233 ▽문의(033) △축제준비위〓682-8008 △고성군청(기획실) 680-3211 △홈페이지 www.kosung.kangwon.kr
▼함께 떠나요
경북횟집에서 생태 맑은탕 시식(아침식사)이 포함된 무박2일 패키지. 화진포 해맞이∼명태축제∼건봉사. 출발 23, 24일(2회) 서울. 4만9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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