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노트]'800대 1' 퀴즈프로 출연 경쟁률

  • 입력 2002년 2월 20일 18시 04분


출연자는 정말 자신이 선택한 문제를 푸는가? 봉투는 눈가림이고 제작진이 정해놓은 문제가 순서대로 나오는 건 아닌가?

MBC ‘생방송 퀴즈가 좋다’(일요일 오후 5·10)의 PD인 내게 시청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다.

이런 의문을 가진 시청자들이 아직도 있다면 언제 날을 잡아 방송국으로 직접 와 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시청자의 생각이 틀릴 경우 스태프들을 위해 음료수 한 상자 정도는 선물로 사셔야 한다는 부탁도 함께.

‘퀴즈가 좋다’의 문제는 생방송 당일 날 개봉되며 누가 어떤 문제를 풀게 될 지는 담당PD도 모른다. 의사에게 의학 문제가 걸리거나 국어교사에게 문학 문제가 걸리면 방송을 하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야∼, 문제 한 번 잘 골랐네.”

생방송 당일 날 ‘퀴즈가 좋다’의 부조정실은 여느 집 안방의 분위기와도 같다. 문제가 하나 나오면 여기저기서 답을 맞히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가 출제되면 서로 내 답이 정답이라고 주장하며 옥신각신 실강이를 벌이기 때문이다.

‘퀴즈가 좋다’의 최고 상금은 2000만원이다. 이것은 실로 적은 돈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상금용도는 거의 다 밥값과 술값으로 나간다고 한다. 출연하기 전에는 상금을 받으면 냉장고를 바꾸네, 아들 자전거를 사 주네 하다가도 막상 상금을 타고 여기저기 한 턱 내다 보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문제를 잘 풀었으면 상금 많이 받았다고 밥 사고, 못 풀었으면 회사망신 집안망신 시켰다고 술 사고…. 그러다보면 적자가 될 때도 허다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들이 기꺼이 한 턱씩 낼 수 있는 것은 잘했든 못했든 ‘퀴즈가 좋다’에 출연한 것을 유쾌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퀴즈가 좋다’ 회의실에는 숱한 문의전화가 걸려온다. 택시 번호판이 무슨 색이냐, ‘중세의 가을’의 저자가 누구냐 등 잡학부터 철학까지….

우리 제작팀을 공부방 혹은 상담실 로 착각하고 있나 싶을 정도이지만 제작진은 이런 질문의 답을 거의 다 알고 있다. 어쩌다가 대답을 못해 주기라도 하면 괜히 미안한 생각까지 들곤 한다. ‘퀴즈가 좋다’에 출연했던 한 출연자는 “‘퀴즈가 좋다’에 출연하는 것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것보다 힘들다”는 우스갯 소리를 한 적도 있다. 그만큼 경쟁률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매주 ‘퀴즈가 좋다’에 신청하는 사람만도 4000여명. 이 중 예심을 볼 수 있는 사람이 200명, 또 예심에 합격해 출연하는 사람은 한 주에 5명 정도이니 대략 셈을 해보면 약 800대 1이라는 경쟁률이 나온다.

그래도 시청자들은 ‘퀴즈가 좋다’에 출연하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밤 새 컴퓨터를 두드리고 상식책을 보고 있으니, 이것이 남들 다 한가한 일요일 저녁에 내가 부조정실 모니터 앞에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최영근 MBC ‘생방송 퀴즈가 좋다’ 책임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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