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성균관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대학은 유림(儒林)의 권유였지만 전공만큼은 ‘넓은 세상에서 큰 학문을 공부하고 싶다’는 당신의 주장이 받아 들여졌답니다. 한때 노벨문학상을 꿈꾸었을 정도로 포부가 컸던 이 청년은 그러나, 첫 직장인 교단에서 삶과 현실의 괴리를 경험합니다. 대학 교수가 되면 좀 나을까 싶어 초급대학(지금의 전문대) 교수가 되지만 정작 연구나 공부와는 담을 쌓아야 하는 현실에 짜증이 납니다.
그럴즈음, 댐건설로 고향이 물에 잠긴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종손인 그는 교수직을 버리고 귀거래를 합니다. 종가를 살리려면 뜯어 옮기고 바깥에 개방해야 한다는 그에게 집안 어른들은 ‘가문에 미친 놈 나왔다’는 험한 소리까지 했다고 합니다.
그는 지금도 밤에 지내는 기제사(忌祭祀)가 1년에 10번이라고 합니다. 여기에 설 추석 명절, 매년 음력10월에 13대 할아버지까지 모시는 시제(時祭)까지 있다고 합니다. 아내인 종부(宗婦) 이순희씨(54)가 겪을 고통도 이만저만 아니라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그를 짓눌렀던 것은 제사 때문만은 아니었던 듯 합니다. 시대변화를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종손이기 때문에, 종가이기 때문에 해야 할 의무와 바꾸지 말아야 할 전통, 그것과 싸우느라 피를 나눈 친인척들과 척을 지고 상처주고 한 세월들이 더 아픈 듯 했습니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춰 살고 싶어 신학문을 공부했는데 쓸 데 없는 곳에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자괴감도 있었겠지요. 그의 제를 받는 이름난 조상들은 당시 진취적으로 역사 변화의 물결을 이끌어 갔지만 지금 이 시대 장손은 정작 그 조상들 제사 지내느라 변화의 흐름에 뒤쳐져야 하는 이 역설.
그러나, 김씨는 종가 지키기를 잘했다고 합니다. 더군다나 지금이야말로 도덕이나 노블리스오블리제를 강조하는 유교적 가치가 혼탁한 이 사회를 구원하는 가치가 될 수 있으리라 굳게 믿고 있습니다. 이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상품으로 우뚝 선 지례마을은 그렇게 고집스레 자기 자신과 싸워 온 한 남자가 있어 가능했던 것입니다. 뿌리와 전통적 가치속에서 우리 모습을 한번 되돌아 봤으면 하는 취지로 그의 책을 이번주 1면에 골랐습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