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가 이렇게 작았나, 라고 중얼거리며, 부옇게 먼지가 덮인 기형도(1960∼1989)의 시집 ‘입 속의 작은 잎’(1989·문학과지성사) 초판 1쇄본을 꺼내든다. 평론가 김현의 해설을 펼친다.
‘나는 (그의 시에)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그의 시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타인들과의 소통이 불가능해져, 갇힌 개별자의 비극적 모습이 마치 무덤 속의 시체처럼 뚜렷하게 드러나 있다는 데에 있다. 시인은 그의 모든 꿈이 망가져 있음을 깨닫는다.’
이어 새로 배달된 김중의 시집 ‘거미는 이제 영영 돼지를 만나지 못한다’(문학과 지성사)를 꺼내든다. 김현의 정의를 받아들인다면,‘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2000년대적 변용을 이 시집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기형도가 ‘나의 영혼은/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라고 탄식할 때 김중은 ‘나는 세상이 꾸는 악몽’(단발머리)이라고 단언한다. 기형도가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고 동물처럼 울부짖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라며 희망의 상실을 노래할 때 김중은 ‘천사가 늙은이를 벼랑으로 떠민다/(…)/원망할 것 없다네/우리가 태어난 것은 이 삶을 원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절망의 메시지를 흘려넣는다.
반면 두 사람의 시집을 확연한 간극으로 벌려놓는 것은 13년이라는 시간의 차이일까. ‘극단적인 비극적 세계관, 도저한 부정의 세계관’(김현) 속에서 기형도의 시가 ‘부정성을 잃게 하는 그리움’과 ‘어조의 서정성’(김현)을 견지하는 반면 21세기 김중의 세계는 한층 극단적으로 조정된 이미지의 콘트라스트, ‘엽기’라고 일컬을만한 비틀림과 부조화의 잔인성을 드러낸다.
‘또 저무는 강가가 그리워/나 길 잃은 똥개처럼 중얼거렸네’(공무도하) 라는 구절은 ‘추억이 덜 깬 개들은 내 딱딱한 손을 깨물 것이다’라는 기형도의 시구와 이미지상 조응하는 듯 하지만, 기형도의 세계가 ‘저녁의 정거장에 검은 구름은 멎는다’는 느린 비가에 멈추는 동안 김중의 빠른 템포 속에서는 ‘유리 구름들이 신경질적으로 구겨지고’(모자이크) 있다. 기형도가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고 인사를 건네는 순간 ‘내 영혼에 집 짓고 사시는 병든 귀신들이여/완고한 마귀들이여’(자화상)라는 가혹한 고발로 자기 내면에의 인사를 엮어낸다.
김중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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