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추천하고 싶은 영화 음악은 ‘뷰티풀 마인드’.
‘타이타닉’에서 한국의 대금과 흡사한 아일랜드 전통 민속 악기 휘슬을 도입해 애잔한 감동을 준 제임스 호너가 작곡을 맡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다시 휘슬 악기 연주를 앞세운 ‘A Kaleidoscope of Mathematics’를 테마 음악으로 들려준다. 제목을 우리말로 옮기면 ‘수학의 만화경’쯤 될까.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감추어진 인생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같은 음악 운용법을 귀로 잡아내는 것도 영화보기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흑인 미녀 스타 할 베리에게 제52회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몬스터스 볼’도 기대할 만하다. 타이틀 곡은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이 불러 유명한 ‘I’m Your Man’이다. 미국 록그룹 ‘제이혹스’가 리바이벌했다. 이 곡은 지난해 개봉된 나니 모레티의 ‘나의 즐거운 일기’ 1부에서 모레티가 이탈리아 근교 도시를 스쿠터로 탐방할 때도 흘러 나왔다. 오리지널과는 전혀 다른 느낌을 주고 있어 이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개봉중인 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음악 면에서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전쟁 영화라면 대개 웅장함을 더해 주는 관현악 리듬을 앞세우는 것이 전통적인 ‘작법’이다. 하지만 리들리 스콧 감독은 소말리아로 출격 직전 헬기가 바다를 순찰하는 장면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Suspicious Minds’를 삽입시켰다. 로큰롤 애호가들의 청각을 즐겁게 해주는 파격적인 음악 선곡 방식이다.
브루스 윌리스가 주연을 맡은 ‘하트 워’에서는 ‘에마’ ‘애딕티드 러브’ 등 주로 멜로 영화 음악을 전문적으로 작곡해온 여류 작곡가 레이첼 포트만이 배경 음악을 작곡했다. 그의 음악은 전쟁의 박진감보다 포로로 잡혀 있는 미국 병사가 목숨이 경각에 달렸지만 군인의 자존심과 위엄을 지켜가는 과정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피아노, 현악기 등을 내세운 연주 음악으로 잔잔한 감동을 배가시키고 있다.
이렇듯 3월에 선보이는 작품의 영화 음악들은 드라마성 음악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작품이 감성에 호소하는 휴먼 스토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소극적’인 음악 추세에 반기를 들고 있는 작품도 있다. 대표작인 사례가 윌 스미스 주연의 ‘알리’다.
이 작품은 흑인 복싱 영웅의 위대한 업적을 부각시키려는 듯 ‘마이티 조 영’의 ‘As the Years Go Passing By’, ‘솔 클랜’의 ‘That’s How It Feels’ 등 격렬한 리듬을 앞세운 랩 스타일의 배경 음악이 수록돼 있다. 여기에 박진감 넘치는 복싱 장면이 어우러진다.
‘리빙 하바나’는 재즈 마니아에게는 가뭄에 단비를 만난 듯한 느낌을 던져 줄 ‘봄비’ 같은 음악 영화다. 이 작품은 재즈 뮤지션 아트로 산도발이 쿠바에서 미국으로 망명해 음악 인생을 펼쳐가는 과정을 그렸다. 극중 주인공이 연인을 아무도 없는 운동장으로 불러내 트럼펫 연주곡 ‘Marianela’를 들려 주면서 연정을 고백하는 장면은 재즈 음악의 가치를 유감없이 발휘한 명 장면으로 기억될 만하다. 이 밖에 카메오로 찬조 출연하고 있는 비밥 재즈의 원조 디지 길레스피와 그를 위해 산도발이 연주해 주는 ‘Blues for Diz’도 빼놓을 수 없는 재즈 명곡이다.
국내 영화 음악으로는 이미연 감독의 ‘버스 정류장’과 이정향 감독의 ‘집으로’가 주목된다. ‘버스…’에서는 모던 포크 계열의 루시드 폴이 배경 음악을 맡았다. ‘집으로’에서는 벙어리 할머니와 나이 어린 손자의 끈끈한 혈육의 정을 현악기를 위주로 한 테마 연주 음악으로 묘사했다.
이경기 ‘할리우드 영화연구소 대표’ 겸 영화 칼럼니스트 lnews4@cho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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