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회복세 뚜렷]“소비자 돈지갑 열기 시작”

  • 입력 2002년 3월 3일 18시 04분


《최근 현대자동차 내부에 이색적인 공문이 한 장 돌고 있다. 김동진(金東晉) 현대차 사장 이름으로 내려진 이 공문은 “최근 자동차 내수판매가 크게 늘면서 차를 먼저 사려는 고객들의 각종 ‘민원’이 쇄도하고 있으나 고객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범위에서 순서를 지켜 출고하는 데 협조해 줄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 정도로 자동차 주문량이 크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돈지갑’을 열기 시작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급증하는 내수 소비〓요즘 현대자동차 영업사원들은 “빨리 차를 뽑아달라”는 고객들의 아우성에 시달릴 정도다. 현재 주문이 무려 10만대 이상 밀려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적정 주문 확보량이 5만대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의 자동차 수요 증가가 얼마나 큰 폭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정몽구(鄭夢九) 현대차 회장 등 경영진은 “무엇보다도 생산 확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며 현장 근로자들을 독려하고 있다.

김뇌명(金賴明) 기아차 사장은 “자동차 업체들이 잇따라 내놓은 신차들이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자동차 경기는 올해 더 호조를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요 백화점들도 매출액이 크게 늘고 있어 들뜬 분위기다. 지난해 10월까지는 높아야 10% 수준이었던 전년 동기 대비 매출액 신장률이 11월 20% 이상으로 껑충 뛴 뒤 그 여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

대형 유통업체들은 앞으로 월드컵, 아시안게임, 양대 선거 등 소비를 유발하는 행사들이 잇따라 있는 만큼 매출액이 더 늘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에서는 지난해 11월 이후 20% 안팎의 매출액 신장률(전년 동기 대비)을 이어가고 있다.

현대백화점 역시 기존 11개 점포에서 2545억원의 2월 매출을 올려 지난해 동기 대비 25.8%의 신장률을 보였다.

신세계 관계자는 “상품권의 경우 올 들어 1, 2월 동안 2190억원어치가 팔려 지난해 같은 기간 916억원보다 2.4배로 늘어나는 등 소비심리 회복이 뚜렷하다”며 “매장 직원들의 체감 경기 역시 계속 좋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꺾이지 않는 부동산 투자 열기〓정부의 세무조사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시장은 여전히 뜨겁다. 오히려 서울 중심의 투자 열기가 수도권과 지방으로 옮겨붙는 분위기다. 종목도 아파트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상가 경매물건 토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오피스텔은 견본주택의 문을 열기도 전에 계약이 끝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2월 대우건설이 서울 논현동에 선보였던 오피스텔은 모델하우스 개장 1주일 전에 사전청약을 통해 분양이 끝났다. 이에 앞서 대림산업이 공개추첨으로 분양한 서울 신정동 목동아크로텔의 경우 접수 5시간 만에 3대 1의 경쟁률로 고층부 분양이 끝났다. 이 오피스텔에는 지방 수요자까지 몰린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에 민감한 상가도 분양이 잘 된다. 월드건설이 1월 말 공급한 수원 아파트단지 내 상가는 최고 29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부천 상동 신동아아파트 단지 내 상가 일부 점포는 내정가의 3.5배가 넘는 값에 낙찰됐다.

한동안 주춤했던 서울 강남권 아파트값도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유니에셋에 따르면 지난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는 지난주 대비 1.70% 상승했다. 서초(2.72%)와 송파(2.25%) 강남구(2.08%)가 2% 이상 상승해 오름세를 주도했다. 가격이 더 뛸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아파트값 상승세에 힘입어 경매시장에서도 고가 낙찰이 속출하고 있다. 경매 정보지 제공업체인 엠테크에 따르면 2월 서울과 분당 일산 평촌신도시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100%를 넘었다. 감정가보다 높은 값에 낙찰된 셈이다.

▽호전되는 지표〓전국 1485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대한상의가 조사한 ‘2·4분기 기업경기 전망’에서 기업경기실사지수(BSI)가 133으로 나온 것은 적잖은 의미를 갖는다. 1·4분기의 80에 비해 전분기 대비 상승폭이 사상 최대인 53포인트에 달했을 뿐만 아니라 2년 만의 최고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들이 느끼는 경기가 급속히 호전되고 있음을 뜻한다.

전체 기업의 85.6%가 “호전되거나 비슷할 것”이라고 응답했고 악화한다고 예상한 업체는 14.4%에 불과했다.

21개 전 업종이 경기호전을 예상한 가운데 사무기기(182)와 정밀기기(150)는 폭발적인 호조를 예상했다. 자동차(144), 기계(141), 전자 반도체(138), 철강(135) 등도 체감경기가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주 발표한 통계청의 산업활동동향에서도 확인됐다.

작년 1월과 비교해 올해 1월의 지표는 산업생산이 10.2%, 출하는 13.6%, 도소매판매는 7.3% 증가했다. 투자 부문도 기계수주가 27.9%, 건설수주가 39.5%로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특히 자동차 컴퓨터 음향통신기기 반도체 등의 생산이 큰 폭으로 늘었다.

1월 중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6.4%로 2000년 1월 이후 2년 만의 최고 수준을 보였다.

김동원기자 daviskim@donga.com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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