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이래, 줄곧 ‘지식의 빛’을 추구하는 나라답게, 프랑스는 오늘날도 ‘사전 편찬’ 활동을 왕성히 벌이고 있는 나라 중의 하나다. 프랑스 서점의 한 코너가 늘 다양한 유형의 사전들로 풍성히 채워지는 것을 보면,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프랑스가 ‘사전의 왕국’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언어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언어사전뿐만 아니라, 각 분야에서 인류가 축적한 ‘지식의 보고’를 빠짐없이 기록하고자 하는 대규모 백과사전에 이르기까지, ‘사전’이란 공통의 깃발 아래 다양한 형태의 사전들이 여기저기서 나보란 듯이 뽐내고 있다.
프랑스인들의 ‘사전 편찬’에 대한 열정과 신념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선다. 우선 지난해 11월 사전의 명가 로베르 출판사에서 16년만에 대폭 손질돼 나온 6권 짜리 대형 언어사전 ‘그랑 로베르 언어사전(알랭 레이, 조젯 드보브 감수, 총 13,440 쪽, 8만 단어와 25만 개의 인용문 수록)’과 소사전(1976)과 중사전(1999)에 뒤이어 현재 대사전의 출간에 심혈을 쏟고 있는 예수회선교사들의 ‘리치 중국어 사전’이 학계와 독서계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2001년 한 해에 프랑스에서는 어떤 사전들이 출판되었고 얼마나 팔렸을까? 이런 부류의 통계 자료와 시사 정보를 참고하기에 제격인 백과사전이 하나 있다. 라틴어로 ‘무엇’이란 뜻의 ‘QUID(쿠이드)’란 이름이 붙은 이 사전은 1963년 이래, 해마다 개정돼 나오는 연감식 백과사전이다. ‘QUID 2002’(도미니크 프레미, 미셸 프레미 감수, 로베르 라퐁 출판사)는 글자 그대로 우리 내부에 잠복하고 있는 호기심을 촉발하는 촉매 역할을 한다. 포켓판(632 쪽)으로 출발하여, 40년이 지난 현재 대형판(190X280mm, 2128 쪽)으로 몸집을 불렸으니, 담고있는 정보량이 무려 30배나 증가한 셈이다. 총 22개 분야를 86개의 세부분야로 나눠, 그 안에 관련 항목들을 주제별 순서로 담고 있는 ‘QUID 2002’는 지난해까지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기술하고 있다.
새로 등재된 프랑스 국내 항목들을 살펴보자. 프랑스 정부의 대 코르시카 섬 정책, 35시간 노동제도의 사회경제적 영향, 벤처기업 육성, 치안 불안 문제, 위험 산업시설의 목록-남불 툴루즈 시의 정유공장 폭발사고의 영향-, 지난해 최고 인기 생방송 프로그램이었던 ‘Loft Story’ 등 이들 항목들은 지난 한해 프랑스 사회의 화두였다. 아울러 금년 최대 관심사인 대통령 선거결과 예상을 위해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는 주요 정치인들의 프로필과 역대 선거 결과 항목들도 눈에 띈다.
이처럼 시사적인 정보를 중시하고 통계자료를 적극 활용하는 QUID 백과사전의 독특한 편집기획은 깊이 있는 지식을 추구하는 전통적인 학술백과사전의 틀에서 많이 벗어나 있다. 마치 쇠라의 점묘화를 보는 듯한, QUID에 실린 깨알같은 통계자료들은 웬만큼 인내심이 강한 독자들이 아니라면 읽어내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이 사전은 프랑스에서 상업적으로 적지 않은 성공을 거두고 있다니, 이 사전의 독특한 편집기획만큼이나 프랑스 독자들의 개성 있는 독서경향도 알아주어야 할 것 같다. 이러한 독자들의 성원에 보답하려는 듯, 출판사는 온라인 상에서 QUID를 무료로 참고할 수 있도록 배려하며 조용히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임준서(프랑스LADL자연어 처리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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