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대 정신과 권준수 교수와 핵의학과 김재진 이명철 교수는 우리말에는 능숙하지만 영어는 유창하지 않은 어른 14명에게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일반 도형 △영어 낱말 △한국어 낱말 카드를 연속적으로 보여 주면서 앞선 단어를 기억하게 한 다음 뇌에서 몇 초 동안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나는 기억인 ‘작동 기억’의 변화를 양전자단층촬영(PET)으로 찍어 분석했다.
김 교수는 “영어 낱말을 기억할 때에는 뇌의 시각 정보 처리 부위가, 우리말 단어를 기억할 때에는 청각 정보 처리 부위가 활성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말을 볼 때 청각 중추가 활성화됐다는 것은 바로 암송에 들어간다는 의미”라면서 “영어 단어를 봤을 때는 즉각적 암송이 이뤄지지 않으므로 이미지 처리라는 부차적 과정을 거친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아무리 영어 단어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라도 우리말처럼 능숙히 영어를 하지 못하게 된다.
김 교수는 “낱말이 아니라 문장을 보여주고 뇌의 변화를 분석하면 두 언어의 문법적 차이 때문에 뇌의 활성 부위가 다를 수 있다”면서 “단어에 대한 작동 기억이 다른 것은 뇌가 말에 어느 정도 익숙한가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영어에 능통하고 한국어는 미숙한 사람 △두 언어에 모두 능통한 사람 등에 대한 PET 분석이 끝나면 조기영어교육이 필요한지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까지 뇌에서 모국어와 외국어를 처리하는 부위가 다르다는 것은 밝혀졌지만 단어에 대한 작동 기억이 다르다는 것은 이번에 세계 최초로 밝혀졌다. 연구 결과는 조만간 미국의 의학전문지 ‘뉴로이미지’에 발표될 예정이다.
이성주 기자 stein3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