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만에 소설을 냈는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4남매 출가시키고, 남편 가는데 좇아다니고…. 아주 바쁘고 정신이 없었어요. 80년대라는 시대상황도 한 몫을 했어. 80년대말 국문과를 다니던 큰 딸이 각 대학 다니며 스터디를 했는데, 한말숙의 딸이 있는지 모르고 누군가 ‘한말숙 작품은 읽지 마라’는 얘기를 하곤 했다나. 내가 이제 이 나이가 돼서 소설을 또 안쓰면 어때.(웃음) 문학은 내 삶의 전부가 아니에요. 내 삶의 일부일 뿐.”
새로 발표한 단편은 언뜻 그의 최근 생활을 그대로 담아낸 듯 비쳐진다. 온통 성조기로 뒤덮여있는 뉴욕 거리를 살피는 작가의 시선속에는 다양한 삶의 양상을 조명하는 가운데 인간의 본질을 살펴온 특유의 필력이 생생하다. 후속 작업을 기대해도 좋을까.
-이젠 종종 작품을 쓰시겠죠.
“한 번 영감이 떠오르면 그 영감을 글로 풀어내야지, 그렇지 않으면 신들린 무당처럼 답답하고 아파요. 작년 10월 미국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3가지 스토리가 머리 속에 떠올랐어요. 이제 겨우 한 가지를 ‘토해낸’ 셈이지. 스토리 하나는 코믹, 또 하나는 이혼후 자녀양육 등에 관한 얘기에요.”
-오랜만에 소설을 쓰셨는데 컴퓨터로 작업하신다는 점 외에도 달라진 점이 있을까요.
“이제는 집중해서 글을 쓰기가 힘들어. 밤에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면 황 선생이 몸 상한다고 팔을 잡아 끌지. 더 늙어지기 전에 유리알처럼 아주 투명하고 순수한 작품을 꼭 쓰고 싶어요.”
‘투명하고 순수한 작품’을 얘기하면서 그는 입가가 잔잔한 미소를 띄웠다. 그에게 ‘그동안 작가로 살면서 가장 감동깊었던 일’을 물었다.
“1993년 ‘아름다운 영가’가 노벨문학상 한국 후보작으로 추천되었을 때죠. 1980년대에 폴란드에서 이 작품의 번역출판 제의를 받았을 때도 감격스러웠죠.”
-이제는 해외에서 이름을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만.
“한국문학도 세계로 나갈 수 있구나, 가능성이 있구나라고 여겨져셔 기쁘고, 거기 내가 한 몫을 한 것 같아 흡족하죠. 요즘은 외국인들로부터 e메일도 많이 받고 있어요.”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남편 황 교수는 한 마디 거들법도 한 데 잔잔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이 부부의 ‘사는 법’은 어떤 모습일까.
“황 선생은 별로 말이 없으셔요. 나는 활발하고 얘기 많이 하고. 나도 예전에 서울대 음대에서 가야금 강사를 했는데, 황 선생은 전문가라 내가 연주하는 소리를 몹시 듣기 싫어해. 시끄럽다, 그만하라고 하죠. (두 사람은 가야금 강습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황 선생 몰래 다시 해봐야지.”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