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철(梁性喆) 주미대사는 나이지리아, 터키 대사와 함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특별 연설을 했다. 주미 한국대사가 TV로 생중계되는 미국의 국가 행사에서 연설을 통해 한국의 입장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백악관은 연단 뒤편에 태극기까지 걸어주었다. 태극기는 부시 대통령이 “국제 연대를 통해 테러를 근절하자”고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바람에 펄럭였다. 부시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도움을 준 우방국들을 열거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인들은 한국으로부터 지원과 도움을 받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주미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을 아시아를 대표하는 연설국으로 선정한 것은 전쟁과 테러를 모두 겪은 한국이 이번 테러와의 전쟁에 기여한 점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대사관 직원들도 부시 대통령이 “굳건한 한미 동맹관계를 내외에 과시했다”며 흐뭇해했다.
그러나 미 언론의 분석은 조금 달랐다. 폭스뉴스와 CNN방송 등은 “한국이 연설국으로 선정된 것은 앞으로 미국이 북한에 어떤 조치를 취하든 한국의 지원과 협조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이라크 공격에 대한 지원을 염두에 두고 터키를 유럽 대표 연설국으로 선정한 것과 같은 이유라는 것.
미 언론의 분석이 아니더라도 한국을 전면에 내세운 미국의 저의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한마디로 “앞으로 알아서 잘 하라”는 얘기였다.
물론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고, 테러 근절을 위해 협력할 것은 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향후 제2단계 테러전쟁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지도 모르고, 더욱이 대량살상무기를 이유로 북한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가 먼저 깃발 들고 나선 꼴이 된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한기흥 워싱턴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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