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수 北에 강제 송환됐다 再탈북

  • 입력 2002년 3월 14일 18시 37분


베이징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들어가 난민지위와 한국행을 요청하고 있는 탈북자 25명은 북한에 송환되면 극약으로 자살하겠다고 밝혀 그 절박한 심정의 일단을 드러냈다.

이들이 배포한 성명에 따르면 이들 중 일부는 이미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돼 북한에 송환된 뒤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는 사람이며 두 번 이상 탈북을 시도했던 사람도 상당수에 이르는 것으로 돼 있다.

탈북자 인적 사항
 성명가족관계나이직업출신지

가족1

최병섭남편52광부

온성

김영봉부인49사무원
최철영아들25광부
최철만아들17 

가족2

이 성남편43광부

회령

김영희부인40사무원
이진화10 

가족3

김광덕남편44공무원

명천

전춘하부인41주부
김성국아들18 
김성애16 

가족4

유동혁남편45치과의사

무산

김명옥부인39 
유진옥15 
유 철아들13 

가족5

신형영남편36광부

선봉

원경희부인36광부

가족5

이 일남편49광부

온성

김영숙부인44 
이대갑아들19 
이대성아들16 
이형심14 

개인

김 향여성16학생(고아)함흥
이선애여성16학생(고아)회령
이봉철남성26광부삼봉

이들은 “북한에 송환된 뒤 우리는 수개월 동안 감금과 고문을 당했다”면서 “그때받은 처벌은‘극악한(Atrocious)’ 것이었다고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25명 중 유일하게 본명이 최병섭이라고 밝힌 탈북자는 별도의 개별 성명서에서 자신이 한때 북한 노동당 당원이었으며 97년 부인 및 3자녀와 함께 중국으로 탈출했다가 북한에 붙잡혔다고 공개했다.

52세로 전직 광부였다는 그는 “붙잡혀 북한에 송환된 뒤 극심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다”면서 “특히 노동당원 출신이기 때문에 만약 다시 붙잡힐 경우 아마 사형당할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의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다시 탈북한 이유에 대해 “한국에 가면 ‘남부끄럽지 않은(Decent)’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97년부터 2차례 탈북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이성씨(가명)는 부인과 딸을 데리고 세 번째 탈북 기도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부인 이씨는 성명서에서 “강제 송환된 뒤 교도소에서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매를 맞았다”면서 “두 번째 적발됐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삼켜 자살을 시도했지만 중국 공안당국의 수술로 목숨을 건졌다”고 폭로했다.

탈북 가족 중 가장 수가 많은 이일씨(가명) 가족 5명도 97년 탈북을 시도했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송환된 후 수개월간 감금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성명서에서 자녀들로 하여금 한국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에 나섰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한국행이 이뤄질 경우 “장남은 기독교 선교사, 차남은 축구선수, 딸은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또한 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탄압과 기아, 질병이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에 나선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국제인권자원봉사단과 ‘북조선난민구원기금’ 소식통은 “탈북자 가운데 일부가 병에 걸려 있다”고 말했으나 구체적인 병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김선우기자sublime@donag.com

▼일행이 경비원과 몸싸움하는 사이 정문 통과 “망명” 밝혀▼

최병섭씨 등 탈북자 25명은 베이징(北京)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하기 위해 치밀한 사전준비와 구체적 행동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6월 26일 장길수 일가족의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베이징 사무소 농성 사건 이후 베이징 내 외국 공관에 대한 중국 공안의 경비가 강화된데다 탈북자 신분으로 여섯 가족이 포함된 25명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은 현지 사정상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한 둥즈먼와이(東直門外) 산리툰(三里屯) 외교단지는 한국을 비롯한 각국 대사관이 밀집해 있어 공안이 항상 순찰을 도는 만큼 일반인의 접근이 쉽지 않다.

탈북자들은 미리 ‘북한 난민을 위한 생명기금’ 등의 도움을 얻어 영문 성명서를 준비했다. 그러나 진입대상 대사관의 이름은 마지막에 써넣었다. 외국 공관의 경비 상황을 보면서 진입대상 대사관을 결정했다는 뜻이다. 스페인은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유럽연합(EU)의 의장국이며 정문이 넓고 경비원 수가 적어 진입이 용이했다.

탈북자들은 국제적 관심을 끌기 위해 AP통신에 거사 계획을 미리 알려준 것으로 전해졌다. AP통신 기자는 결행시간(한국시간 오전11시) 2시간 전부터 현장에서 대기, 진입 사실을 발생 3분 만에 최초로 타전했다.

탈북자들은 대사관에 진입할 당시 일행 중 한 명이 대사관 앞을 지키던 중국 경비원과 몸싸움을 하는 틈을 타서 일제히 정문을 통과해 구내로 밀고 들어갔다. 대사관 직원들과 몇분간 고성이 오가는 등 소란이 빚어졌지만 이내 망명 의사를 밝히고 신변 안전을 확보했다.

또 북한으로 강제송환될 경우 준비한 독약으로 자살하겠다며 배수진을 친 것도 사전계획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 ljhzip@donga.com

▼거사前 외국언론사들에게 계획 알려▼

각국의 주요 언론들도 탈북 주민들의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스페인대사관 집단 진입사건의 파장에 촉각을 세우며 14일 일제히 주요 뉴스로 타전했다.

이들은 ‘거사’ 전에 베이징 주재 외국 언론사들에 계획을 알린 것으로 전해짐에 따라 AP통신은 사건 발생 2시간 전부터 현장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맨 먼저 1보를 보내기도 했으며 AFP 로이터통신 등이 곧바로 그 뒤를 따랐다.

미국 CNN방송도 이를 주요 뉴스로 보도하면서 작년 장길수네 가족의 경우와 비교해가며 인권 및 북한과의 관계 사이에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중국의 입장을 소개했다. 영국 BBC방송도 이번 사건과 함께 최근 급증하고 있는 탈북자들의 한국행 사례를 전했다.그러나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오후 현재까지 이번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중국의 곤혹스러운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박혜윤기자 parkhy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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