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한국가는 거냐”…뜬눈으로 밤새운 25명 환호

  • 입력 2002년 3월 15일 18시 05분


공항으로
난민지위와 한국행을 요구하며 주중 스페인대사관에 진입했던 탈북자 25명의 신병처리를 둘러싼 긴박했던 드라마가 사건 발생 27시간여 만에 중국 당국의 제3국 추방으로 결론이 났다. 장래에 대한 불안감 등으로 첫날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샌 탈북자들은 15일 오전 자신들의 문제가 인도적 방안에 의해 해결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크게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탈북자들의 스페인대사관 출발 과정은 마치 ‘007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격적으로 단행.

선도에 나선 승용차와 외교관 번호판을 단 12인승 미니버스 3대, 지프 등 탈북자들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차량 5대는 오후 2시3분경(한국시간)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 싼리툰중제(三里屯中街)에 위치한 대사관 정문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되돌아 대사관 옆 골목길을 거쳐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으로 직행.

대사관 앞 도로 남북쪽에 둘러친 경찰 라인에서 탈북자들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진을 쳤던 7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은 탈북자들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차량이 눈 깜짝할 사이 대사관을 빠져나와 골목길로 사라지자 허탈해 하는 모습.

○…중국 당국의 탈북자 빼돌리기 작전은 출발 1시간 전부터 어느 정도 감지됐다. 오후 1시경 중국 측의 검은 세단 승용차 6대가 스페인대사관으로 들어간 데 이어 1시반경 경찰관 70여명이 속속 도착해 대사관 주위에 추가로 배치됐으며 1시48분경 WJ01-00006 인민해방군 소속 차량 6대가 대사관으로 진입. 인민해방군 차량이 너비 8m 이면도로를 시속 60㎞ 속도로 달려들어가는 바람에 대사관 북쪽에서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황급히 길을 비켜주기도.

○…이날 대사관 앞에는 AP통신 로이터통신 CNN방송 NHK방송 아사히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이 출발 1시간 전부터 나와 뜨거운 취재경쟁을 전개. 그러나 정작 조선통신사와 노동신문 등 베이징에 주재하는 북한 기자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중국 당국과 스페인대사관 등은 탈북자들의 행선지에 대해 이들이 공항을 거쳐 중국을 떠날 때까지도 철저히 보안을 유지. 탈북자들은 ‘불법 입국’ 죄로 제3국으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싱가포르 브루나이 필리핀 중 한 나라로 간다고 중국소식통들이 귀띔.

○…탈북자들에 대한 중국 정부의 신속한 신병처리 방침은 이날 오전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기자회견을 통해 예고.

주 총리는 “중국 외교부가 해당 대사관들과 협의해 합의점에 도달했으며 곧 결과가 밝혀질 것”이라고 말해 이미 제3국 추방으로 결론이 났음을 시사.

○…중국 당국과 스페인대사관측은 14일 밤부터 15일 오전까지 탈북자 개개인에 대한 신원 확인은 물론 탈북 동기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 탈북자들은 사전에 준비한 듯 자신들의 대사관 진입 등에 대한 입장과 신원 등에 대해 거의 완벽하게 준비된 서류들을 제시해 조사가 급진전됐다는 후문.

○…중국인들은 탈북자들의 스페인대사관 진입과 한국행 요청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반응. 이는 CCTV, 인민일보, 신보(晨報), 신보(信報), 만보(晩報) 등 중국 언론들이 이 사건을 15일 오후까지도 전혀 다루지 않았기 때문.

싼리툰중제에서 만난 한 20대 회사원은 “그런 일이 있었느냐”고 되물으며 “신문과 방송은 물론 인터넷판 신문에서도 그런 기사를 보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베이징 주재 외교관들은 “황장엽(黃長燁)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비서 사건 때만 중국 언론의 보도가 있었을 뿐 장길수 가족 망명요청 사건 등 탈북자들의 사건은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전언.

○…탈북자 25명을 태운 것으로 보이는 중국 남방항공 CZ 377편이 15일 밤 9시47분(한국시간 10시47분)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에 착륙.

손상하 주 필리핀 대사 등 한국 외교관들과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 대표가 마닐라 공항에 미리 대기했다가 이들을 환영했다고.

필리핀 항공당국은 “이들이 두려움에서 벗어난 탓인지 극도로 피로해 보였다”면서도 공항에 도착하자 안도의 한숨을 쉬는 모습이었다고 전언.

○…탈북자 25명이 15일 비행기편으로 중국을 출발하자 스페인 외무부의 한 관계자는 “상황이 끝났다”며 “우리가 추구했던 인도주의적 해결방식으로 만족스럽게 문제가 해결됐다”고 안도의 한숨.

○…한국 정부는 당초 주중 한국총영사관에 탈북자들을 수용한다는 계획은 잡았으나 중국 측이 난색을 표명해 포기.

사태 해결에 관여했던 한 소식통은 “중국 측이 싫어하는데 굳이 한국총영사관으로 데려올 필요가 있겠느냐는 결론이 났다”면서 “중국 측이 나쁜 선례를 남긴다는 이유로 한국 측의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고 전언.

베이징〓하종대기자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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