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 거대한 장성이 또 하나 생겨나고 있다. 2000여년전 이민족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했던 만리장성은 차가운 회색벽돌이었다.그러나 21세기에 쌓고 있는 새 장성은 벽돌 대신 푸르른 나무가 성벽을 이루고 있다.바로 ‘녹색 만리장성’인 것이다. 이 장성이 막으려는 적은 오랑캐보다 더 무서운 상대다. 창과 칼로 무장하지는 않았지만 훨씬 더 가공스런 적, 바로 자연으로부터의 위협이다.
베이징(北京) 동북쪽 150km. 물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내몽고의 황야지대 한가운데에 오아시스처럼 도시가 하나 들어서 있다.츠펑(赤峰).
그 츠펑에서 다시 모랫바람을 헤치며 북쪽으로 3시간 가량 달리다 보면 붉은 산들이 앞을 가로막고 선다. 산이라기보다는 차라리 황토 흙더미.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몸 속의 습기마저 남김없이 빨아들일 것처럼 건조하다.》
그러나 산 속으로 들어가자 희미하면서도 강렬한 생명의 숨길이 전해져왔다. 그 생명력의 발원은 어린 나무들이었다. 3∼4m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 묘목들. 겨우 1m를 넘을까 말까한 키의, 나무라고 하기보다는 새싹이라고 불러야 좋을 어린 생명들이 황토 흙위에 자라고 있었다. 나무를 심기위해 파놓은 구덩이들도 밭이랑처럼 길게 펼쳐져 있다.
묘목들은 너무 하찮아 보여 숲이라 부르기도 민망하다. 이 건조한 기후를 이겨낼까 아슬아슬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 어린 나무들은 메마른 땅 속에 뿌리를 박고, 낮지만 당당히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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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릉들이 끝없이 이어진 듯한 황토산맥. 사막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는 이 나무들이야말로 사막으로부터 중국의 인민과 땅을 지킬 ‘방패’다. 이 숲이 바로 중국인들이 지금 쌓고 있는 녹색 장성, ‘방사림(防沙林)’이다.
중국 국토의 북쪽에 둘러쳐지고 있는 이 방사림들은 녹색과 황색, 자연과 인간, 사막과 문명을 가르는 전선이다. 사람과 모래와의 인진사퇴(人進沙退)의 공방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격전장이다.
지금 중국에게 가장 큰 적은 미국 등 외부의 강대국이 아니라 바로 사막이다. 전국토의 3분의 1이 이미 사막화된 황량한 토지다. 해마다 24만㏊가 사막화되고 4억 인구가 사막화로 고통을 겪는다.
사막화를 막으려는 중국정부의 노력은 필사적이다. 북부를 동과 서,중부로 나눠 방사림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화북 동북의 13개 성 400만㎢, 전국토의 42%가 조림 대상이다.2050년까지 사막화 지역 개선 3단계 사업을 통해 산림 비율을 13%에서 25%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2000년말까지 조림한 면적은 7만㎢ 정도. 아직 갈길이 멀다.
중국임업과학연구원 마웬유안(馬文元) 교수는 “우리나라의 방사림 조성은 환경보호 차원이 아닌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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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대표적인 방사림 모범 지역인 츠펑의 방사림 사업은 60년대에 시작돼 40년간 산림비율이 4배로 늘어났다.이중 작년에 조성된 면적이 1만6000㏊. 우기인 7∼9월에 주민 1만2000명이 동원돼 나무를 심었다. 방사림의 나무들은 건조한 기후에 강한 품종들이다.
소나무 대추 백양나무과 등 귀에 익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사막화토지에 생존력이 강한 중국 자생종들이다. 이들의 생명력은 놀랍다. 일년에 두 번만 비를 맞아도 살아남는다. 비가 오지 않으면 수 ㎞ 떨어진 하천에서 호스로 물을 끌어와 뿌려준다. 그 정도로도 3년 후 90% 이상 ‘생존’해 숲을 이룬다.
중국 사막화의 주범은 지구 온난화에다 사막의 ‘번식력’이지만 30%는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인재(人災)’이기도 하다. 50년대말 대약진운동 당시 중국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산림과 초지를 농지로 개간했다. 그로써 당장의 끼니는 얻었을지 모르나 마구잡이 남벌은 생태계 파괴를 낳았고 자연으로부터의 복수를 불렀다. 방사림은 결국 인간의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부메랑이자 인간의 회개의 기념비이기도 하다.
중국의 방사림 조성은 한국도 지원하고 있다.한국임업연구원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베이징(北京) 밀운단지 등 중국 4개 지역에서 조림을 돕거나 공동연구하고 있다.한중의 ‘그린벨트’ 연대인 셈이다. KOICA 신교승과장은 “중국의 사막화는 황사바람을 통해 한국에도 피해를 끼친다. 결국 중국에서 나무를 심는 것은 한국인 자신을 돕는 것”이라고 남의 나라 조림사업을 지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방사림은 자연과 인간 사이의 투쟁의 현장이면서 공생(共生)의 현장이다. 그건 또 인간들간 공생의 현장이기도 하다.
츠펑(중국)〓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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