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순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소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향원익청(香遠益淸·그윽한 향은 멀리 퍼질수록 더욱 맑아진다)’이라는 글귀처럼 50여년간 잔디와 벗하며 갈고 닦은 눅진한 향이 오랜 시간 멀리 퍼지면서 더욱 맑아져 소년과 같은 해맑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듯 했다.
이 날 유창순씨는 장춘회 멤버로 참석했는데 이 모임에 관한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줬다.
70세 이상의 경제계, 학계 원로 골프 모임인 장춘회는 1920년대에 결성됐다. 한국의 골프 역사와 궤를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골프 모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경제인들의 골프 친목 모임이었으며 당시 이름은 담수회(淡水會)였다. ‘군자들의 교분은 맑은 물처럼 담백하다’는 뜻의 ‘군자지교 담여수(君子之交 淡如水)’라는 글귀에서 이름붙였다는데 광복 후 ‘젊음 속에서 산다’는 뜻에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특기할 만한 것은 90세가 넘는 회원들에게 지팡이를 선물하는 관례가 있는데 18명의 회원 중 2명이 이미 받았고 올해 또 한 명이 받게 된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회원들이 경기에 임하는 자세는 청년 같았으며 계절에 맞는 멋진 의상들은 패션쇼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만큼 멋스러웠다.
젊을 때보다 비거리는 짧고 걸음걸이 또한 느렸지만 오랜 구력에서 말해주듯 어프로치샷은 대부분 뛰어났다. 여성인 필자를 의식해서인지 드라이버 거리를 내려다 힘이 들어가 실수를 하는 분들도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필자는 거리를 내지 않으려 애썼으나 호쾌한(?) 드라이버샷을 날리는 바람에 젊음(?)이 부럽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 날 가장 감명받았던 순간은 모임이 끝나갈 무렵 ‘고향의 봄’과 ‘어머니 은혜’를 부르는 순간이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노신사들이 마치 초등학생들처럼 동요를 열창하는 모습은 뇌리에 박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분들의 표정에는 ‘적자지심(赤子之心·갓난아이처럼 거짓이 없는 마음)’이 엿보였다. 노래를 부르는 그 순간만큼은 ‘소년 할아버지들’이었다.
골프를 통해 인생의 많은 것을 배웠다는 유창순씨는 “골프는 사람을 가장 잘 표현하는 운동”이라고 강조했다. 한 발짝 뒤로 물러서서 넉넉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갖게 된 것이 모두 골프 덕분이라고도 말했다.
이순숙 월간 골프헤럴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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