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본에서는 어디를 가나 ‘개혁’을 외치는 소리로 떠들썩하다. 물론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종래의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한 대학의 모습으로는 이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다며, 사회의 각 방면에서 ‘대학 개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히토쓰바시(一橋) 대학의 학장인 이시 히로미쓰가 최근의 ‘대학 개혁’과 관련한 현황 보고를 정리한 것이다. 사실 일본의 대학은 연구 및 교육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대학 운영의 효율성이나 정보 공개, 국제경쟁력 등에서도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음이 사실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현재 일본의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일본 사회의 출산율 감소로 인한 급격한 인구 감소이다. 일본의 18세 인구는 1992년에 250만명에 달했으나 그 후 급격히 줄어 2009년에는 120만명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숫자상으로는 대학 지원자 모두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인기가 있는 대학으로 지원자가 몰릴 것이 명확하므로, 많은 대학이 정원 미달이 되리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일본의 국립대학은 재정의 60%를 국민의 세금에서 조달하고 있다. 세금을 투입해가며 정원을 밑도는 국립대학을 유지할 이유가 없지 않으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대학 개혁을 한층 가속화한 것이 정부가 내세운 ‘국립대학 행정법인화’ 방침이다. 문부과학성에 종속되어 있던 국립대학을 2004년부터 모두 독립된 법인으로 한다는 안(案)이다. ‘행정법인화’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각 대학의 자율성이 높아지리라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오히려 문부과학성의 권한이 강해지리라는 전망도 그에 못지않다. 그러나 저자는 불명확한 점이 있다고 해서 행정법인화에 반대하는 태도는 잘못된 것이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필요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면에서 이 책은 ‘대학 개혁’ 추진파의 의견을 집약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저자는 ‘국립대학은 여태껏 온갖 특권으로 보호받아 온 안이한 공동체였으므로, 경영적 측면을 확실히 염두에 둔 기업체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음의 세 가지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로 대학의 연구와 교육에 경쟁 원리의 도입이 불가결하다는 것, 둘째로 종래의 연구지상주의에서 벗어나 교육 중시로 나아갈 것, 셋째로 학생들의 교육은 국제적인 수준을 목표로 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학도 사회의 일원이므로 이 같은 논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나 대학이 제공하는 지식이 경제효과만으로 환원되어 버린다면 대학은 이미 대학 본래의 사명을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중세 유럽에서 고대의 귀중한 고전 지식을 수도원의 깊숙한 곳에서 소리 죽여 가며 보존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 다가올 시대에도 진리를 보호할 피난처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대학은 진리의 피난처가 되기에는 너무 위험한 장소인 듯싶다.
이연숙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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