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악재로 지지도가 ‘날개 없는 추락’을 보이는 데다 노동당 내에서조차 ‘왕따’를 당하고 있기 때문. 급기야 물러나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물러나라’〓영국 선데이타임지는 24일 영국인의 과반수가 그의 총리직 수행에 실망했으며 다음 총선까지는 사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 2277명 가운데 △54%가 그의 총리직 수행에 실망했으며 △20%는 즉각, 43%는 다음 총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답하는 등 63%가 사임을 바란다고 전했다. 특히 노동당 지지자 가운데 3분의 1이 그에게 실망했다고 답했다.
당내에서는 그에게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 움직임마저 감지된다. 선데이타임스지와 가디언 등 영국 언론들은 노동당 의원들이 고든 브라운 재무장관이나 찰스 클라크 의원을 블레어 총리를 대체할 당수로 내세울 조짐이 보인다고 전했다.
가디언지는 노동당 내 주류 의원들도 블레어 총리 교체에 공감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아직은 교체 움직임이 조직화되지는 못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왜?〓블레어 총리는 ‘친구’ 사이로 자처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배신’에 결정타를 맞았다. 블레어 총리는 9·11테러 직후부터 부시 대통령 못지않게 열심히 뛰며 대테러전쟁을 지지해 왔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확전론을 흘리면서 영국 내 여론이 차갑게 돌아섰다. 선데이타임스 여론조사에서 영국민의 59%는 미국의 대이라크 군사행동에 영국이 지원하는 것을 반대했다. 130명의 노동당 하원의원은 영국의 미국 지원을 반대하는 동의안에 찬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시 대통령의 수입철강 고율 관세부과 정책 발표가 블레어 총리를 더욱 코너로 몰았다. 영국 언론에는 ‘일방적인 대미 퍼주기’ ‘영주(부시)와 가신(블레어) 사이’ ‘블레어의 부시 짝사랑’ 등 블레어 총리를 비꼬는 말이 난무했다. 앨리스 매흔 노동당 의원은 “영국은 미국의 애완견 노릇을 그만 하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국내적으로는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 우파적 정책을 밀고 나왔던 게 노동당 지지자들로부터 점수를 잃었다. 최근에는 그가 노동당에 정치헌금을 한 인도 태생의 사업가 락스미 미탈이 루마니아 국영제철소를 인수하도록 루마니아 총리에게 편지를 써준 게 발단이 된 ‘스틸게이트’ 때문에 몸살을 앓았다. 야당인 보수당은 미탈씨가 소유한 미국 내 업체가 이번 수입관세 부과를 위해 로비를 했다며 블레어 총리를 압박하고 있다.
성장과 복지를 결합한 ‘제3의 길’의 내세우며 화려하게 등장한 뒤 지난해 재선까지 성공한 젊은 지도자 블레어 총리. 앞으로 그가 가야 할 ‘제3의 길’은 좁고 험한 길이 될 것 같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