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인터뷰]도지원 "사약먹는 연기하다 진짜 죽을뻔"

  • 입력 2002년 3월 31일 17시 38분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는데. 도지원은 한 명의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1년 반 동안 그렇게 악을 썼나보다.

SBS ‘여인천하’에 대해 “무늬만 사극이다” “역사왜곡이다” 는 등의 비난도 있었지만 어쨌든 도지원(36)이라는 ‘예쁘장한 연예인’이 이 드라마를 통해 ‘배우’로 거듭났다.

사약을 받고 죽는 것으로 마지막 촬영(8일 방영)을 마친 그는 곧장 SBS 아침 드라마 ‘엄마의 노래’에서 미혼모 역을 맡았다. ‘경빈티’가 채 가시지 않은 그를 SBS 일산 탄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 "쌍화차 주세요, 노른자 빼고"

1년 반동안 연일 강행군으로 몸이 많이 약해졌다는 도지원은 음료수 하나를 마실 때도 몸을 생각한다. “뭘 마시겠냐”고 매점 종업원이 묻자 대뜸 쌍화차를 주문한다. 가채와 한복을 벗고 굵은 웨이브 머리에 얌전한 정장을 입고 나타난 그의 모습은 사실 커피 광고에 어울릴 법했다. 사약 대신 마셨던 쌍화차를, 정말 또 마시고 싶은 걸까?

“사약 먹다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사약이 코로 들어가는 바람에 하루 종일 코를 풀었는데 콧물에서 계속 쌍화탕이 나오는 거에요. 한 번에 찍었으니 망정이지 두 번 찍었으면 정말 죽었을 지도 몰라요.”

그는 ‘여인천하’를 찍으면서 몇 가지 직업병(?)을 얻었다. 무거운 가채를 하루종일 이고 있어 목디스크에 걸렸다. 지금도 좌우로 30도 이상 고개를 돌리지 못한다. 또 심한 두통과 부위는 작지만 원형탈모증도 있다.

“내 몸이 몸이 아니에요. 100회쯤부터 체력의 한계가 느껴졌어요. 카메라 불만 꺼지면 병든 닭처럼 졸았으니까. 순전히 ‘깡다구’로 버틴 거죠.”

# 발레리나에서 경빈으로

그의 ‘깡다구’는 선화예고에서 발레를 전공하면서부터 단련된 것이다. 숭의여중 재학시절 머리를 기를 수 있다는 ‘특혜’ 하나 때문에 발레를 시작했으나 그 후 발레는 그녀의 인생이 돼 버렸다. 혹독한 훈련과 연습에 발이 부르트고 굳은 살이 박혔지만 지독한 연습벌레였던 그는 교내 공연에서 번번이 주연을 거머쥐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한양대 졸업 이후 국립발레단에 입단하면서 그는 무언가 ‘너무 순탄하다’는 느낌에 삶이 무료해졌다.

“한 화장품 회사로부터 모델 제의를 받았어요. 구경이나 가보자는 생각에 회사로 찾아갔다가 그날 촬영을 하게 됐죠. 국립발레단은 외부 활동이 전면 금지돼 있어요. 사표를 내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

그는 지금도 발레 공연에 일절 가지 않는다. 볼 때마다 아련한 미련이 복받쳐 우울해질 까봐서다.

# 미혼모라니, 이 무슨 변고?

“하지만 연기자를 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었어요. 그 전까지는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더 넓은 세상을 몰랐었죠. 성격도 훨씬 더 밝아지고.”

그는 인터뷰 내내 ‘여인천하’ 출연진이 눈에 띌 때마다 인사를 건네고 장난을 쳤다. 파천군이 지나가자 “에잇∼, 소인배!”라며 장난끼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여인천하’를 촬영하면서 언젠가 이 드라마에서 하산(?)하면 꿀맛같은 휴식에 빠질 기대에 차있었지만 연기력을 인정받은 그를 방송가가 가만히 둘리 없었다. 그는 1일 시작하는 SBS 새 아침드라마 ‘엄마의 노래’에서 미혼모 현명혜 역을 맡았다.

“시집도 안간 처녀한테 미혼모라니, 이 무슨 변고입니까?(웃음) 제 딸로 나오는 홍수현씨가 ‘엄마’라고 부르는데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그래서 요즘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많이 놀아줘요. 아이를 키운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비슷하게나마 체험해보려고요.”

그는 요즘도 가끔 책상을 탕탕 치거나 ‘뭬야∼’가 입에 붙어 입이 근질근질하다고 한다. 특이한 점은 경빈에게 사약을 내린 중종(최종환)이 이 드라마에서는 끈질기게 그에게 구애하는 상욱 역으로 나온다는 것.

“500년 전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제야 이루는 건가요? 꼭 영화 ‘은행나무 침대’같네.(웃음) 이제 제법 나이가 들어서인지 들어오는 배역도 ‘아가씨’ 역은 안 들어와요. 그래도 아직 ‘아줌마’는 아니라 다행이네요.(웃음)”

눈가에 하나 둘 잔주름이 생기기 시작한 그는 올해 나이 서른 여섯이지만 도지원처럼만 나이를 먹을 수 있다면 노처녀가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예쁘게 보이기를 포기하고 1년반 동안 열심히 ‘이년 저년’ 욕을 하고, 책상을 걷어차고, 코로 쌍화탕을 들이마신 그의 모습이 퍽 아름다워 보였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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