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치로부터의 韓銀 독립

  • 입력 2002년 4월 2일 18시 07분


한국은행이 정치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밝힌 박승(朴昇) 신임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오늘의 이 시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통화와 물가안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한은 총재가 ‘중앙은행의 독립’을 강조한 것은 일견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박 총재의 말을 여느 때처럼 당연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올해가 현정권의 마지막 해로 대통령선거를 치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한은의 모습이 ‘독립’과는 거리가 있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집권여당은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경기부양책을 추진해왔다. 이미 지난해부터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는 목적으로 각종 부동산 규제를 풀었고 심지어 올해 예산의 65%를 상반기 중에 집중적으로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그 결과 경기는 부분적으로 급속히 회복되었으나 아파트값을 비롯한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오르는 부작용을 빚었고 일부에선 벌써 경기과열과 물가불안을 걱정하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물가안정을 책임져야 할 한은은 과연 제 역할을 다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 이르기까지 통화신용정책은 사실상 재정경제부가 좌지우지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경기회복에 발벗고 나선 재경부가 그동안 금리인하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한은이 거의 방관했던 것은 아닌가. 한은은 과연 통화 및 금리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이런 점에서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정치로부터의 독립을 밝힌 신임 박 총재의 다짐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박 총재는 이와 함께 앞으로 경기안정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말로만 그쳐서는 안될 일이다. 선거를 앞두고 정부와 여당에선 경기부양에 대한 요구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정부 일각에서 ‘아직 과열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런 움직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한국은행이 선거의 해에 정치적인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통화신용정책을 독립적으로 펴나가는지를 주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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