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감에 젖어 세월을 허비할 수는 없다. 50대 초반이면 학업을 마치지 않은 자식들 뒷바라지가 우선 걱정. 게다가 무엇보다도 일을 그만하기엔 아직 ‘젊은’ 나이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 재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것.
해태제과에서 25년간 근무하다 52세에 퇴직한 한은상씨(56)는 창업을 선택했다. 업종은 베이커리 체인점. 서울 마포구 도화동에서 ‘뚜레쥬르’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는 한씨의 창업 과정을 들여다보자.
# 사표를 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식품연구소장으로 있던 한씨는 1997년 회사가 부도를 내고 사정이 어려워지자 이듬해 4월 다른 임원들과 함께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이제 좀 쉬라”는 가족의 권유에 아무 일도 하지않고 서너달을 보냈다. 그리고 나서 ‘사회 공부’를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25년간 하다보니 사회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일단 창업쪽으로 방향을 잡은 한씨는 여기 저기서 열리는 창업 스쿨과 창업 박람회를 부지런히 찾아다녔다. 그는 “창업 정보를 얻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창업 계획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 전공을 살리자
한씨가 선택한 업종은 베이커리 체인점. 회사에서 익힌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는 “잘 모르는 분야에 손을 댔다가 실패한 사람들을 많이 봤다”고 말했다.
# 철저한 시장 조사부터
한씨는 부인 정성말씨(52)와 함께 시장 조사에 나섰다. 어느 체인에 가맹할지를 정하기 위해 빵가게를 돌면서 일일이 맛을 봤다. 가게 자리를 점찍고 나서는 주변 여건을 살폈다.
정씨는 “사무 빌딩이 얼마나 있는지, 버스 정류소와는 가까운지 등을 그림을 그려가면서 따져봤다”고 밝혔다. 하루 종일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행인수를 세보기도 했다고.
# 투자는 안전하게
친구들은 한씨에게 “식품 전문가니까 ‘한은상’이라는 이름을 걸고 빵집을 차리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 그러나 한씨는 보다 안전한 체인점을 선택했다. 그는 “50대는 모험을 하기엔 위험한 나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초기 투자 자금 2억원은 집을 팔아 마련했다. 부인 정씨는 대출을 활용하자고 했지만 그는 “이자 부담을 지면서까지 사업을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집을 팔았다.
# ‘나’를 버려야 얻는다
“처음에는 남편의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가 들릴락말락 했어요. 대기업에서 임원하던 양반이라 그랬는지….”
정씨는 처음 가게문을 열었을 때의 남편 모습을 들려주면서 크게 웃었다. 한씨는 처음 몇 달은 배달도 나가지 않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문 여는 소리만 들리면 반사적으로 ‘어서 오세요’를 외친다. 술에 취한 손님이 반말로 주문을 해도 ‘그래도 손님인데…’라며 웃는 얼굴로 맞는다.
# ‘새로운 인생’이 즐겁다
한씨 부부는 오전 7시부터 자정까지 교대로 가게를 지킨다. 한씨는 “육체적으로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회사 다닐 때보다 편하다”고 말한다. 정씨는 “낮에도 남편 얼굴을 볼 수 있어 좋다”며 흐뭇해했다. 벌이도 임원 시절 월급보다 많은 편. 무엇보다도 밝고 건강하게 살 수 있어 좋다고 부부는 입을 모았다.
“빵집에 오는 손님들은 맛에 대한 기대 때문에 표정이 밝습니다. 매일 밝은 얼굴들을 대하면서 살다보니 우리도 함께 밝아지는걸 느낍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 베이커리 체인점 초기 개설 비용
뚜레쥬르
크라운베이커리
파리바게뜨
가맹비
500
500
500
보증금
1,000
1,000
1,000
기기설비
3,000
1,850
3,000
인테리어
1,960∼2,250
2,250
2,550
간판
300
350
200
기타
700∼1,150
50
500∼700
합계
7,460∼8,200
6,000
7,750∼7,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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