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은 서구문명과 이슬람문명의 충돌을 예견했지만 이와 비슷하게 우리 사회에서도 서로 다른 가치관이 부딪치는 사례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유교와 페미니즘의 ‘불편한 관계’가 그것이다. 우리 여성들이 유교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 제도가 유교에서 비롯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서구에서 시작된 페미니즘에 대해 유림(儒林)에서는 우리 전통과 미풍양속을 거스르는 것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왔다.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급상승하면서 유교와 페미니즘은 팽팽한 긴장 관계를 더해가고 있다.
▷이 둘은 벌써 몇 차례 ‘물리적인’ 격돌을 벌인 적이 있다. 동성동본 혼인 금지제도 폐지를 놓고 헌법소원까지 가는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동성동본혼인금지제가 폐지됐다. 2년 전에는 서울 종묘공원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아방궁(아름답고 방자한 자궁의 줄임말)’이라는 제목의 퍼포먼스를 벌이려다가 유림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요즘은 호주제 폐지 문제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이들의 화해는 평행선처럼 불가능한 것인가.
▷세계적인 유교학자 두웨이밍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그 접점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우선 그는 유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 남녀 평등을 포함한 인본주의이기 때문에 페미니즘과 상반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모든 사상이 그렇듯 유교도 고정된 관념이 아니며 시대에 맞게 변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경북 안동의 도산서원이 이퇴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여성의 참배를 처음 허용했다는 소식이다. 유서깊은 도산서원이 지난 430년 동안 고수해온 ‘금녀(禁女)의 공간’을 여성에게 개방한 것은 상징적 의미가 적지 않다. 보수적인 분위기의 유교쪽에서 먼저 여성들에게 악수를 청해온 것이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한국 유교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 것일까.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