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낙안읍성-보성차밭 “마음이 포근해요”

  • 입력 2002년 4월 17일 18시 09분


연록색 차밭과 키 큰 삼나무들 사이로 한가로이 걸어가는 관광객들.
연록색 차밭과 키 큰 삼나무들 사이로 한가로이 걸어가는 관광객들.

#수탉 홰치는 소리에 잠깨

목청좋은 수탉 홰치는 소리에 새벽잠이 깼다. 얼마만일까. 이 소리 들어본 지. 초가집 따끈한 온돌방에 깔끔한 이부자리에 누워 보름달 보고 짖어대는 누렁이 소리를 자장가삼아 편안히 깊은 잠에 빠져 본지도.

훤히 밝은 낙안읍성 민속마을의 아침. 비틀린 장짓문을 겨우 발끝으로 밀어 열고 문밖을 내다 봤다. 하늘에는 청명한 파란 하늘이, 땅에는 빗질 자국 곱디고운 흙마당이 있다. 문지방을 넘으려다 툇마루에서 낯선 것을 보았다. 양은 쟁반에 담긴 주전자와 컵. 자리끼였다. 어젯밤 민박집 아주머니(황정애씨·68)가 놓아둔 것이려니. 여주인의 섬세한 마음 씀씀이에 시골 외갓집에 온듯한 푸근함이 느껴졌다. 툇마루에 걸터 앉아 집안팎을 살폈다. 수백년은 족히 됐을 거대한 은행나무가 낮은 담장 너머로 보였다.

‘낙안 마을에 와서’

낙안 마을에 와서

흐르다 멈춰 버린 시간을

조심조심 줍는다.

옛 성을 돌면서

초가 지붕 위로 내리는 빗방울이랑

은행나무 등걸에 돋은 이끼랑

대숲에 고인 참새 소리랑

서늘한 눈짓을 함께 나눈다.

들깻잎 풋풋한 향으로 퍼지는

민속 마을 투박스런 사람들

오봉산을 반쯤 내려오던 구름도

잠시 멈추어 서서

은은한 장막을 드리우고 있다.

이시연(전주교대 교수)

담장 아래 널찍한 꽃밭은 그야말로 꽃대궐을 이뤘다. 자주빛 목련에 분홍빛 겹동백이 활짝 피어있고 땅바닥은 온통 낙화로 뒤덮였다. 곁에는 가는 봄이 아쉬운 듯 철쭉 치자꽃 금남화 홍도화 부용화 아스파라 수국이 덩달이 화들짝 꽃잎을 열었다.근 백년은 족히 됨직한 이 고택. 깔끔하기가 특급호텔 못지 않았다. 거기에다 수세식 좌변기 화장실까지 갖췄다. 도시 여행자라도 불편함을 느끼기란 쉽지 않을 터.

읍성의 아침햇살은 비교적 늦게 비쳤다. 낙안벌판을 둘러친 높은 산 때문이다. 관광객 발길이 뜸한 새벽이야말로 읍성안을 구경하기에 최고의 시간. 성벽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 보며 산책을 시작했다. 초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 높지도 낮지도 않은 흙담따라 이어진 좁은 골목길, 위세 당당한 관아와 객사, 그 옆에 줄지은 노거수, 그리고 주막 마당에 드리워진 흰 광목천의 차양막…. 지구 어디서 이렇게 편안하고 아름다운 아침을 맞을 수 있을까.

낙안읍성 민속마을

#여린 찻잎이 안개처럼 피고

이제 절기는 곡우(穀雨·지난 20일). 청명지나 곡우오고 곡우지나 입하(5월 6일)오니 곡우라 함은 봄의 마지막이요 여름의 문턱아닌가. 읍성을 나와 벌교를 거쳐 보성으로 향했다. 곡우 맞아 차잎 따기 시작한 녹차밭을 찾아서다. 이맘쯤 차밭은 연중 가장 아름답다. 연록의 여린 차잎이 피어오르고 그 잎을 따는 아낙네들이 푸른 차밭을 아름답게 수놓기 때문이다.

그 향긋한 햇차맛 보려 찾은 보성의 녹차밭. 삼나무숲에 둘러싸인 대한다업 보성다원의 차밭은 이른 아침인데도 찾는 이가 적지 않았다. 연전에 수녀와 비구니가 등장했던 모 무선통신회사 TV CF의 인기에 힘입은 덕도 있지만 차를 즐기는 애호가가 늘어난 탓이기도 하다.

온통 삼나무와 차나무로 뒤덮인 녹차밭에서 맞는 아침은 싱그럽기만 하다. 높은 산등성 너머로 늦은 아침해가 고개를 내밀면 차밭 드리운 아침 안개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대신 서늘한 삼나무 숲터널 아래 느릿한 산책로의 부드러운 흙길 위로는 짙은 숲그늘이 발빠르게 자리매김을 한다.

녹차밭 찾는 길. 쭉쭉빵빵 삼나무에 촉촉팽팽 차나무가 번갈아 반긴다. 삼나무 숲그늘, 차나무밭의 긴 골을 산책하면 몸과 마음 역시 초록으로 물들어 손목 비틀면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그 상쾌함이란….

차밭에서 시작된 초록 여행. 근처 봇재 너머 보성만의 율포해변에서 즐기는 해수녹차탕 으로 이어진다. 3층 남탕(여탕은 2층)의 통유리창 밖으로 내다 보이는 바다. 물나간 이른 아침이면 사각게 분주히 오가는 갯벌이, 물드는 오후에는 빈 배로 수놓인 바다를 본다. 탕안의 물은 지하 120m 암반에서 뽑아올린 바닷물 성분의 지하수. 이 물로 차잎 우려내 붉은 빛 감도는 녹차탕과 이 물만 담은 해수탕 두 개가 있다. 눈으로 입으로 즐기던 녹차의 푸르름. 이번에는 녹차 우려낸 해수탕에서 온 몸으로 즐긴다. 피부의 매끈거림으로 녹차 성분이 흡수됨을 느낄 수 있다.

순천·보성〓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남도백반과 비계 김치찌개

‘언는 옷쇼이’

진일 기사식당의 대형간판 한귀퉁이에 쓰인 이 말. 본 순간 일본말인가 싶었다. 그럴 수 밖에. 남도사투리를 발음 그대로 쓴 것이니. 풀자면 ‘얼른 오시오(어서 오세요)’인데…,하필이면 인사가 ‘언는 옷쇼이’일까.

대답은 식당이름에서 볼 수 있는 ‘기사’에 있었다. ‘진일’은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제일 가까운 식당’의 줄임말. 여주인 배일순씨(68)가 20년전 식당을 낼 때만해도 이 곳은 호남고속도로 승주IC 진출입로 바로 앞. 그러다 보니 주고객은 트럭운전기사였다. 시간에 쫓기는 트럭운전기사들인 만큼 식사시간도 제대로 못맞췄을 터. 그래서 인사가 ‘얼른 오시오’가 됐다.

이 식당 메뉴는 딱 한 개. 백반뿐이다. 남도밥상이란 일단 반찬 가짓수에서 시선을 압도하는 것이 특징. 곰배(전어밤)젖 꽃게장 생선구이 등 무려 열서너가지나 된다. 그런데도 가격은 4500원. IMF이전 가격 그대로다. 그리고 혼자 와도 똑같이 독상을 받는다.

이 집 반상의 백미는 프라이팬에 끓여내는 김치찌개. 시골돼지의 구수한 비계가 양념 잘 배인 찌개김치와 어울려 그 맛이 예사롭지 않다. 비결은 별도로 담그는 찌개용 김치에 큰 솥으로 두루치기한 돼지고기를 얹어 다시 한번 끓이는 조리법. 두툼 넙적한 고기는 가위로 잘라야 할 정도다.

“찌개맛 못잊어 찾는 단골이 많지요.”

지금도 매일 새벽 4시반이면 부엌에 들어가 모든 반찬을 직접 장만한다는 배씨. 14년째 돕는 며느리 서정엽씨(39)와 10년 이상 함께 지내온 식당아줌마들(3명)로 한결같은 그 맛은 점점 깊어만 간다.

고속도로 확장으로 승주IC가 옮겨가는 바람에 지금은 승주IC에서 800m지점(선암사행 857번 지방도 초입의 고속도로 굴다리 앞). 선암사까지는 5㎞니 오가는 길에 들르기 좋다. 순천시 승주읍 신성리. 061-754-5320

◇여행정보

▽여행일정〓낙안읍성에서 1박후 보성 녹차밭으로 가는 것이 좋을 듯. 낙안읍성 근방에 선암사가 있으니 오가는 길에 꼭 들러보자.

▽찾아가기 △손수운전〓서울∼호남고속도로/승주IC∼857지방도∼낙안읍성∼857번지방도∼벌교∼2번국도∼보성읍∼국도18번∼대한다업 보성다원∼국도18번∼봇재∼845번 지방도∼율포(해수녹차탕)∼845번지방도∼송곡∼2번국도∼벌교∼857번 지방도∼선암사(죽학리 삼거리에서 3.7㎞)∼857번지방도∼진일기사식당∼굴다리∼좌회전(22번국도)∼승주IC∼호남고속도로. △버스 ①낙안읍성〓서울↔벌교(강남터미널·4시간반 소요) 벌교↔낙안(군내버스·15분소요) ②녹차밭·율포〓서울↔보성(벌교경유·5시간반 소요), 보성↔율포(녹차밭 경유 군내버스·30분소요) △기차 ①낙안읍성〓서울↔순천/새마을호 3회, 무궁화호 12회왕복. 새마을호(주말) 3만600원.철도고객안내센터 1544-7788. 순천↔낙안 시내버스(63번) 운행. ②녹차밭&율포〓서울↔보성/평일 1회, 주말 2회왕복. 주말 2만1300원.

▽문의 △대한다업 보성다원(www.daehantea.co.kr) 061-852-2593 △낙안읍성 민속마을(http://nagan.pe.kr)〓①관리사무소 061-749-3645 ②민박〓네 집(방 두세칸)이 있다. 방 한칸에 2만5000원. 황정애씨댁 061-754-3032 ③유적 정보〓KBS순천홈페이지(www.suncheon.kbskorea.net).

◇함께 떠나요

▽1박2일(9만5000원)〓진안 마이산∼선암사∼낙안읍성(숙박)∼보성차밭∼율포(해수녹차탕)∼소쇄원∼순창 고추장마을. 출발(4회) 23, 30일, 5월 4, 7일. ▽무박2일(5만8000원)〓제암산(철쭉트레킹)∼율포(해수녹차탕)∼녹차밭(삼나무숲 차밭 산책+녹차시음)∼낙안읍성 민속마을. 출발(4회) 20, 27, 30일, 5월4일.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순천 보성=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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