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러시아워는 피할 수 있어도 지구 곳곳에 늘어나는 사람의 홍수는 피할 수 없다. 지구가 사람으로 뒤덮일 날을 생각하면 인류의 미래는 자못 암담하기만 하다. 인류의 개체가 이렇게 증식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문제는 신중히 판단해야 할 가치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류가 지구를 장악하게 된 데에는 과학을 신봉한 데카르트적 선언이 결정적이었다. 한 때의 축복이었던 선언이 이제 와서 저주가 되었다. 인간의 이성이 자연을 일방적이고 굴종적으로 복속시키면서 마침내 인간의 파멸이 머지 않았음을 예감하게 된다.
이 책은 다원적 가치에 입각한 지구 민속문화의 수평적 총합과 대등한 논리를 거대한 담론으로 제시한 저서다. 근대적 이성에 의해 배타적으로 옹호된 과학 만능주의를 분쇄하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자연과 자연이 생태론적으로 연결되었음을 우리 민속문화의 사례인 농촌문화, 민속사의 공생, 풍수지리설, 민속신앙 등을 예증 삼아 명쾌하게 입증했다.
이 책의 핵심적 어휘는 ‘공생적 가치’,‘지속 가능성’이다. 공생적 가치는 생태론의 관점에서 생명 모순이나 생명의 멸절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지 않는 혁신적 제안이다. 지속 가능성은 하나의 생명체가 지속적이고 보편적 가치를 지녔다는 주장을 통해 속도와 새로운 것으로 무장된 이 세계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자 했다. 이는 하찮은 것과 느린 것의 고귀함을 반성적으로 고찰한 결과이다. 다른 것과 더불어야 할 가치가 우리 민속문화의 관념 속에 자리잡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재발견되어야 할 사실은 생태학적 인식이 가로로 또는 세로로 다른 생각과 깊이 접합돼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휘황찬란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풍부하게 구사되고 있는 지식의 원천은 분명히 학제적이고 통학문적이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이 고루하게 막혀 있지 않음이 확인된다. 민속문화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이런 다양성의 담론과 만났다.
모든 책은 저자가 생산하고 독자가 소비하므로 소비되는 재화를 생산적 가치로 되돌려야 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그것이 공생적 가치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음은 인정하지만, 모든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 예컨대, 풍수지리설이 과연 적절한 것인가 의문이 든다. 음택풍수가 조선천지를 횡행해서 전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이는 것이 이 시대에 필요한 일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속문화는 민중들에 의해서 일상적 삶 속에서 성숙된 정립되지 않은 의식의 소산이므로 산만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만일 민속문화의 ‘흔한 것’이 귀하다고 한다면, 미세한 사례나 장황한 예나 열거하는 것이 귀한 것일 수 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이치는 삶 속에 거듭 되살아나야 할 체계적이고 정립된 의식이다. 그러한 이상이 이 책에서 구현되었는가 반문하고 싶다.
가장 오래된 것이 오래간다는 전제는 납득하기 어렵다. 전지구적 차원에서 생성과 소멸은 깊은 연관성을 가진다. 다른 것의 소멸은 또 다른 것의 생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편적 이치다. ‘세계는 인간 없이 시작해서 세계는 인간 없이 끝날 것이다’라는 명제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민속문화 역시 이어지면서 변한다고 보아야 옳다.
김헌선 경기대 교수·구비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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