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신용카드업계의 최일선 영업현장이지만 썰렁한 분위기에 적막감마저 감돌았다. 본사 홍보실에서 인터뷰 협조를 당부했지만 영업점의 A과장은 “지금 분위기로는 모집인을 만나게 해줄 수 없다”며 취재를 거절했다.
이 회사는 “본인 확인을 거치지 않고 부적격자에게 카드를 발급했다”는 이유로 3월말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신규회원 모집 일시정지’의 중징계를 받은 곳.
신용카드 모집인이 흔들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신용카드 모집인은 모두 10만여명. 17만명대인 생명보험 설계사 인원에 육박하는 ‘새로운 직업’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금융당국이 올 3월 가두 모집을 제한하면서 모집인들은 장래에 대해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흔들리는 카드 모집인〓3월말부터 LG 삼성 외환카드의 모집인 3만여명은 45∼60일간 일손을 놓아야 하는 바람에 일시휴직 상태다. LG카드 김인권 과장은 “상담원을 대상으로 사내교육을 실시하고 과거 급여가 유지되도록 배려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영업정지 중인 외환카드의 정모 팀장은 장래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1, 2개월 쉬다가 다시 시작하겠지만 내가 데리고 있던 ‘새끼 모집인’ 8명은 이미 업계를 떠났다”고 말했다.
영업이 재개돼도 가두모집이 금지된 만큼 ‘빌딩타기’로 승부하겠다고 모집인들은 말하고 있다. 빌딩타기란 회사원이 많은 대형 빌딩에 요량껏 잠입해 무작정 카드발급을 권유하는 영업방식을 가리키는 이들의 은어.
빌딩을 탈 배짱이 없으면 그만두는 수밖에 없다. 카드회사를 떠나는 경우 주부들은 가정으로 돌아가고, 남성 직원들은 주로 다른 제조업체의 판매사원으로 전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이 카드업계 관계자들의 설명.
외환 국민 현대카드를 동시에 모집하던 B씨는 올 초까지는 신규카드를 하루 평균 5∼7장 모집했다. 외환카드를 권했다가 ‘가지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오면 국민카드를 권하는 방법이 잘 통했던 것. 그러나 금감원은 이달 초 B씨가 맺은 3중 계약을 불법화하면서 1개 회사와만 계약한 뒤 당국에 신고할 것을 명령했다. 여신금융전문협회 박성업 팀장은 “15일 현재까지 1만3000명이 중복가입 철회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B씨는 “앞으로 소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거리에서는 회원신청만 받을 뿐 본사에서 신용평가를 통해 무자격자를 걸러내고 있다는 것. 그런데도 신용카드가 남발됐다면 카드회사에 발급기준을 강화하도록 하고 나아가 모집인들이 ‘신청인의 본인확인’을 소홀히 했다면 해당 모집인을 처벌하는 것이 올바른 처방이란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
거리모집을 불법화한 근거로 “보행에 방해된다”며 ‘도로교통법’을 적용한 것도 군색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
카드사들도 “밀수(密輸)가 문제라면 밀수꾼을 잡을 방안을 궁리해야지 국제공항을 폐쇄해서야 되겠느냐”며 “정부대책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김병태 팀장은 “신청인 한 사람에게 4종류의 카드를 한꺼번에 발급해주면서 신청인에게 현금 4만원을 웃돈으로 얹어주는 중복 모집인이 등장하는 등 폐혜가 심각해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카드 모집인 손명희씨는 “일부 브로커의 문제인데도 정부가 대다수 상담사의 직장을 빼앗는 결정을 내려 아쉽다”고 말했다.
▽나는 전문인인가〓모집인은 ‘첫 3개월이 고비’라는 것이 업계의 정설. 친지에게 의존하는 등 석달가량이 지나면 영업능력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삼성카드 김정석 대리는 “모집인의 3분의 1 정도는 3개월 안에 그만둔다”고 말했다.
모집인들은 정확한 상품지식, 깔끔한 인상과 판매예절 등으로 주변의 시선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해 새 회원을 3500명이나 모집해 판매여왕이 된 삼성카드 전명숙씨는 “카드영업도 실력으로 승부가 갈리는 전문직”이라며 “복잡한 카드의 특징을 일일이 묻는 고객의 질문에 정확히 답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한 상담사는 주유소에 상주하며 운전자가 기름을 넣는 2, 3분 정도의 공백을 파고들어 월 300건가량을 모집하고 있다. 주유 중인 자동차의 유리창을 닦아주며 카드에 대해 설명하는 것.
신용카드 모집인의 평균인은 30대 고졸 여성. 요즘 20대 대졸자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소수다. 삼성카드 측은 “억대 연봉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8000여명의 모집인이 월평균 110만원가량을 번다”고 밝혔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신용카드 및 보험업계 모집인수 (단위:명) | ||||
  | 99년 | 2000년 | 2001년 | 2002년 |
신용카드 | 7563 | 3만1052 | 10만(잠정) | - |
생명보험 | 24만6193 | 24만1429 | 21만4793 | 17만1505 |
손해보험 | 10만2730 | 8만7776 | 8만3466 | 5만70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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