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히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유치가 기대되었을 즈음, 디트본은 FIFA 총회에서 “우리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월드컵을 개최해야 하는 이유다”라는 연설을 했고 이 ‘감동의 연설’은 먹혀들었다. 안타깝게도 디트본은 월드컵 개막을 보지 못한 채 개막 한 달 전인 1962년 4월28일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칠레는 아리카경기장을 ‘카를로스 디트본 스타디움’이라고 명명해 그를 기념했다.
1960년 화산 폭발로 지진의 재앙을 맞은 칠레는 향후 2년간 훌륭한 재건 작업을 통해 이를 극복하고 월드컵을 치를 완벽한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디트본의 숭고한 의지와 칠레 국민들의 부단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칠레월드컵은 ‘폭력으로 얼룩진 월드컵’이라는 오명을 얻게 된다.
최악의 경기는 이탈리아-칠레의 2조 예선전. 이 경기는 ‘산티아고의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칠레의 산체스는 이탈리아 마시오를 주먹으로 쳐 코뼈를 부러뜨리기도 했으나 홈 어드밴티지를 얻어 심판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이에 격분한 이탈리아 선수들이 경기 내내 산체스를 비롯한 칠레 선수들에게 무차별 태클을 가하다 2명이나 퇴장당했다.
브라질의 ‘축구 황제’ 펠레가 체코슬로바키아와의 예선전에서 상대 골키퍼와 부딛혀 실려나가 다음 경기부터 아예 나서지 못하는 등 대회 내내 50명에 달하는 부상자가 나왔다. 이에 FIFA가 “지나치게 폭력적인 팀은 강제 귀국시키겠다”고 경고할 정도로 대회는 거친 플레이로 이어졌다. 칠레월드컵은 역대 월드컵 중 가장 ‘험악한’ 대회로 기록됐으며, 이후 계속되는 ‘축구장 폭력’의 진원지로 꼽히는 오명을 남겼다.
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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