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최재훈/학교에 장애인 화장실 없어…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어느 뉴스 앵커는 이날 “오늘 하루만이 아닌 1년 365일이 장애인의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단 하루만이라도 장애인들의 권리가 제대로 지켜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만큼 장애인들은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교육받을 권리에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내가 서울대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장애인 특례입학 제도는 없었고, 학교 시설도 지금보다 훨씬 불편했다. 계단에는 난간이 없었고, 각 건물에는 그제야 경사로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기숙사에서 약대로 가는 계단에 난간이 없어서 오르내리기가 위험해 멀리 돌아다니느라 안 그래도 오래 걸리는 통학 시간이 더 길어졌다. 또 학교가 워낙 넓다보니 학내를 이동하기 위해 택시를 이용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쉬는 시간에 강의실을 옮겨다니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내가 겪었던 이러한 불편들을 장애인 특례입학으로 들어온 지금의 후배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한 후배는 강의 내용을 대필해줄 사람을 개인적으로 구해야 하는 현실이고, 휠체어를 탄 후배들은 강의를 듣기 전 부모님이 학교에 데리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의가 끝나면 바로 태워 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강의실이 2층이면 강의를 들을 수 없기에 듣고 싶은 과목을 듣지 못하는 때도 자주 있다. 이들에게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같은 과 동기들과 어울리기를 원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바람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비장애인들보다 조금 더 불편한 점이 있는 거야 당연한 일이겠지만 적어도 비장애인들과 같은 강의를 들을 수 있게, 자유롭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장애인용 화장실을 찾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는 않게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야만 장애인도 동등한 교육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고, 장애·비장애인이 같은 조건에서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페어플레이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특례입학으로 학생들을 뽑아놓았다면 뽑은 후에도 장애학생들이 제대로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하는 것이 대학 본부의 당연한 역할이다.

“몇 명의 장애인들을 위해 비싼 시설(엘리베이터, 리프트 등)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엘리베이터나 오토매틱 승용차, 리모컨 등도 처음에는 장애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임을 생각해본다면 그러한 시설을 장애인만 이용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장애인에게 편한 세상은 누구에게나 편한 세상”이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온 말이다.

혹자는 “그래도 서울대에 들어간 장애인들은 훨씬 나은 편이 아니냐”며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장애인들이 대학교육은커녕 초·중학교에서부터 비장애인들과 분리되어 수준 낮은 교육을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차별과 억압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부터 해결되지 않는다면 장애·비장애인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멀기만 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최재훈 서울대 총학생회 장애인권위원회 위원장·약대 98학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