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최총경-경찰 통화 늑장보고 파장

  • 입력 2002년 4월 22일 23시 40분


경찰청 이승재(李承栽) 수사국장이 최성규(崔成奎) 전 특수수사과장과 통화한 사실을 즉시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이유가 뭘까.

최 전 과장이 이 국장에게 전화한 것은 19일 오후 4시1분 도쿄(東京)발 뉴욕행 UA800편 기내. 이 국장은 당시 승용차로 이동 중이었으며 최 전 과장이 기내 전화로 이 국장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어 자신의 도피 이유와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성 주장을 폈다.

그러나 이 국장은 이런 사실을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은 물론 다른 어떤 경찰 간부에게도 알리지 않고 있다가 사흘 뒤인 22일 오전 정례 간부회의가 끝난 뒤 이 청장에게만 간략히 보고했다.

이에 대해 이 국장은 △20일 새벽 뉴욕공항에 도착하는 최 전 과장에게 뉴욕 경찰주재관을 보내 귀국을 종용하는 문제로 정신이 없었고 △가족을 상대로 귀국을 계속 설득해 왔기 때문에 최 전 과장과의 통화도 통상적인 귀국 설득 작업의 하나로 가볍게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국장의 이런 해명은 그다지 설득력이 높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

우선 당시 경찰 수뇌부는 최 전 과장이 도피한 이유를 밝혀내기 위해 연일 대책회의를 가질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따라서 최 전 과장이 스스로 밝힌 '도피 이유'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특히 당시는 최 전 과장과 관련된 의혹이 연일 보도되고 있던 시점이었기 때문에 도피 이유와 의혹에 대한 본인의 해명은 경찰 수뇌부는 물론 사건 관련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이 국장이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최 전 과장과의 통화 사실을 공개한 것도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뒤늦게 보고받은 이 청장의 공개 지시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광주일고 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경찰에 입문한 이 국장은 경찰 내에서 두뇌가 명석하고 판단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따라서 그런 그가 최 전 과장과의 통화를 '가볍게 생각했다'라는 해명은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다.

이 국장의 뒤늦은 보고와 공개가 단순한 판단 착오였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통화 사실을 숨기려고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최규선씨가 제기한 '청와대의 도피 배후설'과 맞물려 의혹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 훈기자 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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