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의 신작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가 출간되기 며칠 전, 그냥 할 일없이 양수리 근처로 바람을 쐬러 나간 그와 나는, 저녁 늦게 땅거미가 어둑해질 무렵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소 그와 주고 받는 얘기는 주로 시에 관한 것이었는데, 의외로 섬세한 성격인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내 마음을 충만하게 해주곤 한다.
30대 중반을 넘긴 두 남자가 할 일 없이 강가에 나가 일몰을 바라보며 시시껄렁한 시와 문학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한다는 것이 어쩌면 궁상맞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와의 ‘수다’는 슬픔이 가슴을 촉촉히 적실 만큼 섬세하고, 또 그의 매혹된 시선이 포착해 낸 이야기와 사물의 아름다움은 그의 시만큼 감동적이다. 그래서, 그를 알게 된 후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를 시인으로서 좋아하면서도, 또 어느덧 그의 인간됨이 풍기는 매력에 더 많은 신뢰를 품게 되었다.
박형준의 두 번째 시집 ‘빵냄새를 풍기는 거울’에는 이런 구절의 후기가 있다. “시를 쓰는 일에서 시대를 보고 혁명을 꿈꾸는 거장들도 있고, 단순히 그때 나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을까를 상상하며 시를 쓰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이다.”
박형준 시인의 이런 생각은 ‘시란, 시간의 궤적을 고스란히 내면에 기록해 두었다가 꺼내놓는 것이 아닐까’하고 생각하던 나와는 아주 잘 통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눈 혹은 프리즘으로 세상을 훔쳐본다. 그 ‘세상을 훔쳐보는 눈’에 어느 날 마법이 걸려 타인이 볼 수 없는 어떤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된 사람, 나는 우습게도 그런 사람들을 선천적인 시인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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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이 이번 신작시집을 통해서 나에게 들려준 아름다움은 ‘슬픔’과 ‘연민’이었다. 때로 그의 시를 읽다보면 그가 엮어내는 사물의 현란한 이미지가 마치 눈부신 햇살 같아서, 출렁이는 햇빛의 아름다움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까닭 없이 서러운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시집 ‘물속까지 잎사귀가 피어 있다’에서 가장 시선을 끄는 부분은 그가 들려주는 ‘신발’의 이미지다.
‘멀리서 그가 바람의 신발을 신고 왔다. 먼 곳을 상상하는 동안, 온기 같은 그는 사라지고 차가운 신발이 남았다. 이 시집으로나는 청년이 저물었음을 안다. 그가 남긴 바람의 신발을 신고 이번엔, 내가 타박타박 걸어가야 한다./먼 곳을 상상하는 또 다른 형제를 위해, 이제 땀이 밴 희망을 위해. 아름다운 헛된 신발이여…’(‘시인의 말’ 전문)
아름다운 헛된 신발, 그 신발이 그를 아름다운 폐인으로 살게 했고, 그를 알고 지낸 몇 년 동안의 추억과 함께 어느덧 우리들의 30대를 저물게 했다.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는 열망이, 시를 쓰는 것의 다른 이름이었는지 모른다고 고백했던 그가, ‘먼 곳을 상상하는 동안’ ‘자신의 청년이 저물었음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무척이나 의미심장하지만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리라.
나는 땀이 밴 희망, 아름다운 헛된 신발을 신고 먼 곳을 응시하던 그에게 타박타박 걸어가야 할 새로운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한때 ‘풀 위의 깊은 우물에 매혹 당해 신작로의 끝을 향해 걷던’ 소년이었던 그가, 자신이 알던 유년의 세상 밖으로 영원히 나가고 싶어했던 것처럼, 그렇게 해서 자신의 삶에 스며든 연민을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했던 것처럼….
김춘식 문학평론가 achron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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