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 배경〓이달 초 임동원(林東源) 대통령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 이후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경의선 연결 등을 골자로 한 공동보도문이 마련됐지만 특사 파견의 성패는 경의선이 약속대로 연결되느냐에 달려있다는 게 대체적인 의견이다.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군사분계선을 가로지른다는 정치 군사적인 의미와 더불어 남북 경제협력 활성화에 기여하는 등 일회성 행사에 그칠 수도 있는 이산가족 상봉과는 질적인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경의선 연결공사 진척의 전제조건은 남북간 군사보장 합의서의 서명 및 교환이나, 북한은 지난해 2월 우리측의 주적론을 문제삼아 서명을 거부하고 군사당국자회담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방백서에 주적 표현을 유지할 경우 경의선 연내 개통이라는 목표가 물건너갈 가능성이 높은 게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가 “북측이 약속한 경의선 공사 재개가 구체적으로 가시화되거나 남북국방장관회담을 개최키로 약속할 경우 주적표현 변경이나 삭제 등의 움직임이 가속화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경우 주적 표현의 삭제 또는 변경과 경의선 연결을 ‘맞바꾼’ 것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주적론 사라지나?〓‘북한이 우리의 주된 적’이라는 의미의 주적론은 95년 국방백서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냉전시대에는 일부 국가에서 ‘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나 탈냉전 이후 대부분 사라졌다. 우리도 94년 국방백서에서 위협요인으로 변경했으나 ‘서울 불바다’ 발언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면서 ‘주적인 북한’이라는 표현이 국방목표로 명시됐던 것.
현재 주적이라는 용어를 사용중인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실질적으로 미국과 남한을 적으로 보고있는 북한도 상대를 특정하는 주적 용어는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게 국방부측 설명이다.
김동신(金東信) 국방부장관은 지난해 예산절감 등을 이유로 국방백서 발간을 한해 연기시키면서 ‘북한 눈치보기’라는 논란이 일자 “주적개념 변경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여러차례 강조한 바 있다.
이 때문에 국방백서 발간 책임자인 국방부 장관이 전면에 나서기보다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권고하고 국방부가 이를 받아들이는 식으로 주적 표현의 변경 또는 삭제가 시도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파장 및 문제점〓강력한 군사력이 서로 맞서고 있는 특수한 한반도 안보현실 측면을 고려할 때 주적 표현의 삭제 및 변경 시도는 곧 주적론의 후퇴 및 안보의식 해이로 비쳐질 가능성이 크다.
남북 간에는 현재 기초적 수준의 군사적신뢰구축(CBM)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 정부는 그동안 북한이 주적론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때마다 CBM을 남북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얘기해왔다.
그러나 북한이 CBM문제를 위한 군사당국자대화에 나서지 않는 마당에 우리측이 섣불리 주적론 카드를 버릴 경우 남북 군사당국자간 대화 가능성이 더 멀어질 우려가 있다. 야당의 강력한 반발과 보수층의 저항을 이겨내는 문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대북 퍼주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적 표현과 관련해 녀북한에 또다시 끌려다니는 인상을 줄 경우 정부 스스로 대북정책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역작용을 할 가능성도 크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