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주의 건강세상]귀도 쉬어야 한다

  • 입력 2002년 4월 28일 17시 17분


지난주 환경부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가 ‘아파트 층간 소음은 시공사 책임’이라고 유권해석한 뒤 환경부에는 시민들의 소음과 관련된 호소가 봇물을 이뤘다. 아파트 주민은 누구나 ‘귀를 기울일’ 소식이었다.

필자의 경우 재작년 집에서 운동을 해보겠다고 트레드밀(러닝머신)을 샀다가 2, 3번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아래층 아주머니가 “어디에서 쿵쿵쿵 굿하나 봐요”라고 뚱겨온 뒤 감히 트레드밀에 올라설 용기를 낼 수 없었던 것. 지난해에는 20년 만에 음악에 빠져보려고 무리해서 홈 시어터 시스템을 장만했지만 볼륨을 조금만 높여도 아내가 성화를 내서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소리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평소 소리에 대해 신경쓰는 사람은 참 적다.

고대 동양에서는 소리를 중시했다. ‘총명(聰明)’이라는 말은 ‘귀가 밝고 눈도 밝다’는 뜻이다. 똑똑한 아이는 귀가 밝은, 즉 총기(聰氣)있는 아이였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눈밝이술이 아니라 귀밝이술을 마셨다. 공자는 예순 나이를 청각과 연관시켜 ‘이순(耳順·무슨 소리를 들어도 거슬리지 않는다)’이라고 했다.

지금은 분명 시각 우위의 시대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소리에 대해서 신경써야 한다. 현재 국민의 8%가 난청으로 고통받고 있으며 도시의 각종 소음 탓에 난청 환자가 급증할 것으로 추정된다. 또 소음은 귀를 피로하게 할 뿐만 아니라 뇌 순환기 등 여러 신체장기의 독소가 돼 건강을 해친다.

일반적으로 80∼90㏈ 이상이면 불쾌하거나 귀에 무리가 올 수 있다. PC방 전자오락실 등은 85㏈, 영화관 지하철역은 90㏈, 노래방은 100㏈, 나이트클럽은 115㏈이나 되니 ‘귀 유해 환경’이 도처에 깔린 셈이다.

현실적으로 귀 건강은 개인이 신경쓰는 수밖에 없다. 가능하면 시끄러운 곳을 피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는 최소 1시간마다 10분씩은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 귀를 쉬게 해야 한다. 직업상 소음에 오래 노출돼 근무하는 사람은 약국에서 귓구멍을 틀어막는 귀마개를 사서 껴야 한다.

국가의 관심도 절실하다. 국방부는 군인이 총이나 포를 쏠 때 귀마개를 끼도록 배려해야 한다. 환경부는 각종 소음을 실질적으로 규제해서 시민들이 조용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찰은 안전벨트 단속도 해야겠지만, 필요없이 경적을 울리는 차량을 과감히 단속해야 한다. 특히 스피커 볼륨을 최대로 높여 인근 사무실 직원의 귀 건강까지 망치는 단체에 시위 허가를 절대로 내줘선 안된다.

조용히 지내고 싶다는 것, ‘동방의 고요한 나라’에서 정년퇴직 무렵인 ‘이순’까지 방해받지 않고 ‘총명’하게 내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은 모든 도시인들의 소망이 아닐까. 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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