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3 걷어찼어…굴로…남자 셋이 둘러싸고 있는 게 보여.
무당2 (피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수선화를 부른다) 그대는 차디찬 의지의 날개로 끝없는 고독의 위를 나르는 애닯은 마음 그리고 그리다가 죽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 또다시 죽는 가엾은 넋①
무당3 쉿! 입을 움직이고 있다…물고기처럼 입만 움직이고 있어…입속에 흙이…죽어서 매장된 게 아니야…아직 숨통이 끊어지지 않았는데 흙을 덮었어…비가 점점 더 오네…아아 비가…파내 주지 않으면 울지도 말하지도 못해.
유미리 …어떻게든 유골을 찾아내서 할배 옆에다….
무당3 너의 사명은 뼈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다. 혼을 끌어올려야지. 닻처럼 가라앉아 있는 너 가족의 혼을. 하나가 아니야. 할배도 할배의 동생도 첫 부인도 첫 아들도 할매도 일본 할매도 모두모두 무거운 한을 껴안고 가라앉아 있어.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할 수 있나? 약속은 지키면 끝나지만 지키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어. 너가 죽어도 끝나지 않아.
유미리는 약속이란 말속에 우두커니 서 있다.
유미리 (목에 힘을 주고 목소리를 갈아낸다) 이대로 가면 나도 가라앉을까요?
무당3 너나 너 아들이나 다 가라앉아. 가라앉든 끌어올리든 둘 중에 하나야. 니한테 그런 이름이 지어졌을 때부터 너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어.
유미리 내 이름?
무당3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 너 할배의 할배도 태어나지 않았을 때, 밀양의 지명은 미리였다.
무당2 미리벌이지.
*①수선화 - 김동진 곡 김동명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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