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는 먹이를 노려보며 덤불 속에 웅크리고 있다. 적의 존재를 알지 못한 얼룩말들은 한가로이 풀을 뜯는다. 둘 사이의 거리는 불과 50m. 돌연 사자가 스프링처럼 땅을 튕기며 돌진한다. 폭발적인 질주. 얼룩말은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거친 숨소리가 생생히 전해져온다. 불과 4,5초간의 짧은 순간, 초원엔 생과 사가 엇갈리는 '정글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케냐 나이로비에서 남쪽으로 100여㎞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암보셀리 국립공원의 숲과 동물, 그리고 사람은 그렇게 ‘아프리카의 아침’을 맞는다.
흔히 사파리파크로 알려진 이곳은 거대한 야생의 동물원이다. 여의도의 46배인 392㎢의 넓은 면적에 사자와 코끼리 기린 등 56종의 대형동물과 조류 215종이 하나의 작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케냐 전국에는 암보셀리 같은 국립공원이 11개 있다. 국립공원은 케냐의 자연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세계 각지에서 암보셀리의 ‘자연’을 찾아오는 관광객은 연간 7만5000명. 공원은 동물과 인간의 영역을 철저히 나뉘어 있다. 공원 한쪽엔 호텔급 숙박시설인 로지가 들어서 있다. 로지를 나서면 사파리 차량은 정해진 길로만 다닐 수 있다. 동물을 관찰하려고 멈출 땐 잠시라도 시동을 꺼야 한다. 동물들의 삶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
‘자연과 동물과 인간의 3각 공존’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암보셀리의 일상은 그렇게 공존의 규칙 속에서 평온해 보인다. 그러나 그 일상엔 덤불 속 사자를 눈치채지 못한 얼룩말 같은, ‘미지의 불안’이 숨어 있다. 그 불안은 어쩌면 공원의 탄생 자체가 안고 있는 ‘원죄’에서 비롯된 것이다.
|
‘야생 그대로’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인간은 동물의 땅에 함부로 울타리를 쳤다. 자연에 대한 인위적인 개입은 반드시 마찰과 저항을 낳는다.
1974년 공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케냐 정부는 그 안에서 동물과 생활하던 마사이족을 밖으로 쫓아냈다. 마사이족은 이에 반발한다며 공원 안의 사자들을 거의 모두 죽였다. 암보셀리에서 사자를 거의 볼 수 없는 건 그 때문이다.
사자가 없는 곳에 코끼리가 몰려들었다. 그러나 엄청난 코끼리의 먹이를 공원 안에선 감당하지 못한다. 궁여지책으로 다른 야생동물을 그곳으로 강제이동시켜 코끼리의 적을 만드는 것도 강구하고 있다고 하지만 한번 깨진 생태계의 균형을 사람의 힘으로 얼마나 복원할 수 있을까.
|
암보셀리는 자연 그 자체로부터도 위협을 맞고 있다. 로지 옆엔 10년 전만 해도 아카시아 숲이 무성했으나 이젠 거의 볼 수 없다. 공원 곳곳엔 가뭄에 나무들이 말라 쓰러져 있다. 나무들의 주검은 건조화라는 자연재앙의 산물이지만 결국 인간들에 의한 ‘인재(人災)의 유적’이다. 나무를 베어내고 태워 농경지를 만들고 집을 지은 죄에 대한 벌이기 때문이다.
|
그 인간의 죄는 아프리카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식민지 시절 백인들은 자연림과 식량 작물을 밀어내고 대농장을 조성했다. 커피 등 환금작물을 심은 자리엔 우기 때 지하수가 충분히 흡수되지 못했고 그건 기근과 흉작으로 이어졌다. 야수와도 같은 문명의 욕심이 진짜 야수의 삶을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
암보셀리가 안고 있는 문제는 지구촌이 안고 있는 ‘보존과 개발’이라는 문제의 축도다. 그러나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두 가지를 조화시키는 것은 그 어느곳에서보다 난제다. 총인구의 과반수가 땅에 매달려 먹을 걸 구하는 가난의 땅에서 두 가치는 거세게 충돌한다. 당장의 이기심이 큰 대가를 치른다는 걸 들이대기엔 가난이 너무 가혹해 보인다.
나이로비의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아프리카 환경을 연구하고 있는 환경부 이재현 과장은 “자연보호와 개발이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는 걸 이들에게 깨우쳐 주는 것이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케냐 그린벨트운동 지도자 완가리 마사이(62·여)는 “숲이 없으면 돈도 식량도 없다”고 단언한다.
|
결국 숲을 지키고 동물의 삶을 보호하는 것이 인간 자신의 삶을 지키는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문명세계가 수백년의 시행 착오 끝에 깨친 그 진리가 아프리카에선 아직 너무 낯설어보인다.
초원을 노닐던 동물들이 나른해지는 암보셀리의 해거름녘. 가족을 위해 사냥 나온 암사자 한 마리가 먼 데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 관광객의 시선이 일상이 된 듯 이쪽을 바라보는 눈길은 무심할 뿐이다. 그러나 사자의 눈이 차량 위 문명의 사람들과 마주치는 순간, 그 눈망울은 이렇게 묻는 듯했다.
인간과 자신 중 과연 어느쪽이 야수이고, 어느 쪽이 약자인지….
암보셀리(케냐)〓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