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화제도서]'활자문화'옹호 기도는… '문장독본님께'

  • 입력 2002년 5월 24일 17시 57분


문장독본(文章讀本) 님께/사이토 미나코(齊藤美奈子) 지음/지쿠마(築摩) 서점 2002년

일본 문학에는 ‘문장독본’이라는 기묘한 장르가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 등 이른바 유명한 일류 작가들은 모두 ‘문장독본’이라는 똑같은 이름의 책을 냈다. 전후에는 작가뿐만 아니라 학자, 저널리스트들도 비슷한 책을 내어 상당한 매상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문장독본’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왜 비슷한 책들이 이렇게 많이 출판되고 있는가? 사이토 미나코(齊藤美奈子)의 ‘문장독본(文章讀本) 님께’는 이런 물음에 답하려는 시도이다.

사이토씨는 매우 발랄하고 싱싱한 문장과 더불어, 깜짝 놀라게 하는 신선한 착안점을 겸비하고 등장한 비평가이다. 언뜻보면 그녀의 문체는 ‘경박한’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그 논법은 정공법이며 분석은 명쾌하고 알기 쉽다. 그러면서도 문제의 핵심을 날카롭게 파헤쳐, 본질을 보기 좋게 끄집어 낸다는 데에 그녀의 특징이 있다.

‘문장독본’은 ‘독본’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문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문장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독자들에게 보여 주는 책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장’이란, 이른바 ‘문학적’ 또는 ‘문화적’이라고 일컬어지는 비실용적인 문장을 가리킨다. 사이토씨에 따르면, ‘문장독본’이란, 문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프로 작가나 저널리스트가, 생활에 쫓겨서 ‘문학’과 같은 것에 참여할 여가가 없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문장관이라든가 교양을 자랑하기 위한 책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문장독본의 입맵시는,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한 번 쥐면 자신의 노래에 도취되어 마이크를 절대로 놓지 않는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사이토씨는 단언한다.

“극단적으로 말해, 적당히 어떤 문장을 인용해 놓고는 ‘이 문장은 이렇게도 명문이다’라고 그럴싸한 비평을 덧붙인다면, 수사학 책은 못 되더라도 문장독본(같은 것)은 제조된다”고 사이토씨는 신랄한 논조로 지적한다.

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문장독본이 유행했던 것은, 1930년대와 1950년대 후반, 그리고 1970년대 후반의 세 시기였다. 그런데, 이 때는 모두 ‘문화의 대중화’와 ‘뉴미디어의 대두’라는 두 개의 파도가 전통적인 활자 문화를 덮친 시기였다. 그 때 전통적인 활자 문화를 사수하려는 움직임이 바로 ‘문장독본’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

위에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사이토씨는 ‘문장독본’에 대단히 비판적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의 ‘수상쩍음’과 ‘미심쩍음’을 웃어 넘기는 작전을 씀으로써, 그것은 진지한 비판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은연 중에 강조한다. 이 책의 결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다음 구절은 이 사실을 말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옷이 몸의 포장지라면, 문장은 사상의 포장지이다. 장식하는 대상이 ‘사상’이라서 거룩한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은 한 벌밖에 없는 옷으로 치장한 자기(사상)를 남들에게 보여서 칭찬 받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히토쓰바시대 교수·언어학 ys.lee@srv.cc.hit-u.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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