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탈북자 인도요구 부당하다

  • 입력 2002년 5월 29일 18시 11분


중국 정부가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총영사관에 들어간 탈북자 4명의 인도를 요구한 것은 한 마디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6월 장길수군 가족이 베이징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진입한 일을 시작으로 올들어 탈북자들이 스페인 독일 미국 등 외국 공관에 진입했을 때는 나름대로 일관성 있는 대응 자세를 견지했고 제3국 추방 형식으로 이들의 한국행을 허용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이번에 우리 공관에 진입한 탈북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인도를 요구한 것은 국제법적으로는 물론 우리 공관과 다른 나라 공관에 대한 차별 대우라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 중국 첸치천(錢其琛) 외교담당 부총리가 얼마 전 “중국에 들어오는 사람을 처벌하지 않고 나가는 사람도 막지 않겠다”고 했는데 왜 한국에 대해서는 그 말과 다른 태도를 보이는지 의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이번 일이 한국 공관을 통한 ‘기획망명의 선례’가 되는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앞으로 탈북자들의 한국 공관 진입이 빈발할 경우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탈북자 문제는 그동안 중국 측이 주장해온 것처럼 중국-북한간에 해결할 사안이 아니라 국제문제가 된지 오래다. 장기적 관점에서 탈북자 문제를 다루기 위한 틀을 모색하는 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당면 과제라고 하겠다.

우리는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확실한 기준은 인도주의가 돼야 한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고자 한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 인터내셔널)도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중국 내 탈북자의 상당수가 여성이며 이중 다수가 조직범죄단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탈북자 인권 문제를 비중있게 다뤘다.

중국에서 탈북자가 해외 공관에 진입할 때마다 사안별로 해결책을 찾는 단계는 이제 지났다. 한중 양국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탈북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공식 채널을 하루 속히 가동시켜야 한다. 중국 측도 이것이 현실적인 대안임을 인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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