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정선 올갱이묵(국수)

  • 입력 2002년 5월 31일 14시 23분


◇ 매끄러운 감칠맛 … 여름 별미로 딱!

강원도는 영동과 영서로 나뉜다. 산악권인 영서의 고산지대는 영동의 해안 음식과는 달리 맛이 밋밋하고 텁텁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외지인의 입맛을 노골적으로 유혹하지는 못한다.

감자와 옥수수, 메밀이 주식인 영서에서는 감자옹심이, 올챙이국수, 꼴뚜국수가 조식(粗食)으로서 3대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집집마다 국수틀이 있거나 마을 공통으로 나무틀이 있었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다.

정선읍의 장날은 봉평장과 마찬가지로 2일과 7일에 선다. 장터를 돌아보는데 좌판 앞에 앉아 올챙이묵을 먹는 모습이 남도 장터의 국밥집을 연상시킨다. 황포묵과 청포묵이 남도를 대표하는 묵이라면 올챙이묵이나 도토리묵, 메밀묵은 강원도를 대표하는 묵이다.

정선읍에는 이름난 묵집이 많다. 장터 안의 대흥식당(033-563-1319)과 석곡집(033-562-8322), 정선역 부근의 동광식당(033-563-0437) 등 유명 묵집들이 널려 있다. 이 묵집들에서는 올챙이국수(묵)만 파는 게 아니라 콧등치기국수(메밀국수)도 판다.

1992년에 개업한 동광식당은 특히 메밀국수인 콧등치기로 이름이 났다. 이 집의 특징은 국물에 된장을 풀어 멸치로 우려낸 것에다 속껍질째 갈아 만든 메밀면을 삶고, 호박 우거지 등을 얹어 내는 데 있다. 향긋하고 쫄깃거리는 맛이 아주 좋다.

장터 안 대흥식당은 약밥백숙이 괜찮고, 대흥식당 옆 해동집(박옥년·033-562-2634)은 올챙이묵이 별미로 꼽힌다. 값도 저렴해 2000원이다. 9년째 맥을 잇고 있는 해동집의 주인은 스스럼없이 전통비법도 일러준다.

먼저 풋옥수수나 마른 옥수수를 물을 넣어가며 맷돌에 간 다음 체에 밭쳐 껍질을 걸러낸다. 그런 다음 맑은 액체를 솥에 넣어 풀을 쑤듯 저어가며 끓인 뒤, 되직해지면 구멍이 숭숭 뚫린 바가지에 부어 찬물에 면발을 받는다. 이때의 면발이 마치 올챙이처럼 하늘하늘 떨어진다 해서 올챙이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여기에 갖은 양념을 하면 달콤한 맛이 입 안 가득 배게 된다. 아닌 게 아니라 매끄러운 감칠맛과 구수한 맛이 여름 별식으로 그만인 듯싶다. 더구나 열무김치를 걸쳐 먹으니 단번에 입맛이 돋는다.

‘열무김치 들어간다. 아구리 딱딱 벌려라’는 나주 지방의 열무김치도 유명하지만, 이곳 고랭지에서 길러낸 열무김치는 냉하면서도 아삭아삭 사근거리고 부드러운 맛이 일품이다. 고랭지 채소가 들 채소보다 비싼 이유도 알겠다.

정선읍 해동집에서 올챙이묵으로 한 끼를 때우고 오늘은 동면의 몰운대와 화암동굴을 찾아간다. 어제는 아우라지 나루를 건넜다. 비탈밭에서는 열무씨를 뿌리는지 일손들이 바쁘고, 저녁 햇살이 짧아진다. 별어곡, 자미원, 예미, 아우라지, 여량, 구절리 화절령 등 오지마을의 정겨운 이름들도 저문다. 1080여m의 각화산을 끼고 있는 무치재의 구불구불한 고갯길도 몇 년 전엔 자갈길이었으나 지금은 시원한 포장길로 변했다. 고개를 넘으며 문득 ‘앞산 뒷산’이라는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우리는 그렇게 살지요 앞산 뒷산에 빨랫줄을 매고요/ 눅눅한 팔자일랑 짧은 햇살에 널어 말리지요.’

그래서 정선 땅을 산팔자, 물팔자라 했던가. 강원도 달비장수도 울고 넘었다는 고갯길. 올챙이묵처럼 하늘하늘한 구름 한 자락도 깊은 골 앞산 뒷산에 걸려 비틀걸음을 친다. 전 국토가 식당화, 가든화, 먹을거리의 즉흥성과 입맛만 좇는 분위기로 덮여가고 있는데 그래도 이곳만은 아직도 숨쉴 공간이 있긴 있다.

이윽고 화암동굴의 약수터로 가기 전에 몰운대에 섰다. 허옇게 말라 비틀어진 고사목이 몰운대에 기대 섰다. 어쩐지 아우라지 처녀상처럼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사진 한 컷을 다시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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