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생사가 갈리는 전쟁터에서 한발 앞서 나간 사람들이 승패를 가르듯 예술이나 역사 발전의 동력 역시 남보다 한발 앞선 상상력으로 변경을 넓혀갔던 사람들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합니다.
소설가 복거일씨는 지식인의 역할을 ‘경계 조건 (boundary condition)’을 푸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경계 조건이란 어떤 결론을 추출해 낼 때 ‘이러 이러하다고 치자’는 가정을 뜻하는 공학 용어라고 합니다. 이를 인식론적으로 확대시켜 보면 우리가 의심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한번쯤 의심해 보는 것, 즉 생각의 경계 조건을 풀어 확장시킨다는 개념이겠지요.
기존의 가치에 도전하고 이를 뒤집는 것은 어떻든, 용기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더구나, 자신이 옳다고 믿었던 가치를 수정한다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5면에 소개한 ‘해방후-1950년대의 경제’의 저자 이대근 교수의 작업의 울림이 큰 것도 그 때문입니다.
검증은 전문가들의 몫입니다만, 과거의 작업을 의심하고 수정하고 이를 결과물로 내놓는 모습은 변화하는 시대 상황과 함께 호흡하고 늘 깨어 있으려는 지식인의 모습으로 비쳤습니다.
1면 ‘저자 말한다’의 주인공인 노 철학자 박이문 교수는 ‘동양은 해석의 문화이고 서양은 뒤집기의 문화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떻든, 이성과 합리로 무장한 서양의 인식론이 현대 사회의 진화를 주도하는 현실에서, 외롭지만, 꿋꿋이 자기 자신과 싸우는 수많은 아방가르드의 주인공들에게 박수를 보내면서 1면 책 ‘도발’을 골랐습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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